레오폴드 칼 뮐러
오늘의 소박한 목표.
남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만의 자존감 높이기.
비교하는 마음 다스리기.
_매일 그림, 날마다 그림 여행(블랙피쉬)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 하루키 감상
1877년 뮐러는 비엔나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그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년부터 악몽에 시달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 교수가 되어 맞이한 첫 번째 방학이 시작되자 뮐러는 (이집트) 카이로를 향해 출발합니다. ㅡ 이미 수차례 방문한 카이로 ㅡ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며칠 후 뮐러는 카이로 단골 호텔에 도착합니다. 짐을 풀고 단골 술집으로 바로 향했습니다. 취할 때까지 영국산 스카치위스키를 마셨고, 술집 소개로 내일 동행할 길잡이를 고용했습니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뮐러. 잠이 오지 않아 카이로의 야경만 멍하니 봅니다. 악몽이 두려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른 새벽. 길잡이는 조수 1명, 낙타 4마리와 함께 엷게 잠든 뮐러를 깨웁니다. 뮐러는 (최근 구매한) 카메라를 낙타에 싣고 길잡이와 함께 호텔을 출발합니다. 3시간 넘게 이동하는 동안 날이 밝기 시작합니다. 지평선에서부터 웅장한, 고요를 품은 대 스핑크스. 어렴풋한 모습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대 스핑크스 뒤편으로 신비를 머금은 카프레 피라미드도 보입니다.
뮐러와 길잡이는 사진기의 위치, 촬영 방법 등 의견 차로 논쟁을 벌입니다. 결국 (그림자가 가장 적은 시간대) 12 ~ 13시 사이 위쪽 언덕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정합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사진은 의도한 대로 한 번에 성공합니다. 추가로 간단한 스케치를 끝낸 뮐러. 일행은 곧바로 카이로로 되돌아갑니다. 사막의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오고, 스핑크스는 어둠에 힘을 빌려 인간의 몸과 영혼을 분리해 영혼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뮐러 일행은 카이로에 도착. 이미 어둑어둑해진 카이로. 뮐러는 서둘러 현상소에 들렸다 나옵니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들려있습니다. 대 스핑크스 사진.
"지난 1년간 반복해 꿈에 등장해 나를 괴롭혔던 대 스핑크스. 매번 스핑크스의 얼굴은 뭉개져 있었다. 스핑크스의 얼굴을 그리고 싶다. 그릴 수 없는 불안, 예술가로서의 불안. 불안의 만성은 공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공포의 대상을 볼 수 있는 사진이 생겼다. 그림을 (공포를) 그릴 수 있다. 스핑크스 얼굴을 그리자. 악몽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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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뮐러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홀로 그림을 그렸다. 사방이 칠흑이다. 가로로 세운 긴 직사각형 캔버스. 일렁이는 촛불 빛에 의지해 뮐러는 식은땀을 흘리며 색을 칠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2. 한참을 그리다 손을 멈춘 뮐러. 고개를 살짝 돌어 어둠을 응시한다. 어둠도 뮐러를 응시한다. 침묵. (촛불의)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모호한 얼굴 형이 나타난다. 빛의 일렁임에 따라 얼굴 형도 출렁인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응시한 얼굴. 사라진다. 뮐러의 손은 움직였고, 그림을 계속 이어간다.
3. 그림이 완성될 즈음 창밖 여명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깊숙이 들어왔다. 초상화까지 닿았다. 박명의 빛. 정신을 차린 뮐러. 작업실의 모든 초는 꺼져있었다. 암흑 속에서 얼마큼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지난밤 출몰해 자신을 지켜봤던 얼굴 형은 완전히 사라졌다. 뮐러는 감정의 벅참이 느껴졌다. 스~읍, 후~ 심호흡을 했다. 무의식적으로 붓을 움직여 (초상화 속) 소년을 비춘 박명의 빛을 더했다.
4. 뮐러는 붓을 내려놓고, 창가로 이동해 완연한 아침을 맞이한다.
(중얼중얼) "스핑크스여 당신의 얼굴을 완성했습니다. 도나 누비스 파셈Dona nobis pacem(평화를 주소서). (기원전 2570년 전 고대 왕국의) 젊은 왕 파라오여. 짧은 생을 살다 간 파라오여. 안식을 취하소서, 당신을 위한 레퀴엠(진혼곡*)"
* 진혼곡鎭魂曲 :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한 곡
* 화가 - 레오폴드 칼 뮐러Leopold Carl Müller (1834 – 1892, 오스트리아)
+ 전기(1834 - 1869)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에서 오스트리아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레오폴드 칼 뮐러는 비엔나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고, 아버지가 죽은 후 가족 부양을 위해 비엔나 피가로(Vienna Figaro) 에서 삽화가로 8년간 일합니다. 이 시기 이탈리아와 이집트를 반복적으로 방문합니다. 뮐러는 이탈리아, 헝가리 장르화로(대중 생활 장면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1860년대 후반 파리에서 영감을 얻어 오리엔탈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리엔탈리즘 장르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 중기(1870 - 1880)
뮐러는 1870년대부터 이집트에 깊이 매료됩니다. 이 시기 이집트 문화, 풍경, 사람을 그린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집트의 광활한 사막, 역사적 유적지, 다채로운 시장 장면들은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1877년 뮐러는 비엔나 아카데미 교수가 됩니다.
+ 후기(1881 - 1892)
뮐러는 이전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주제를 탐구했으며, 특히 인물 묘사에 있어 더욱 심도 있는 접근을 시도합니다. 그의 작품은 인물의 개성과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했고 동시에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탐구합니다.
1890~91년에는 비엔나 아카데미 총장을 역임. 1892년(57세) 사망합니다. 비엔나의 "The Zentralfriedhof"("중앙 묘지")에 묻힙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비평합니다.
오리엔탈리즘 장르화는 유럽 식민지 확장 시대에 탄생해 본질적으로 식민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뮐러와 같은 예술가들이 개인적 의도와 상관없이 오리엔탈(중동, 북아프리카 등) 사회를 이국적이거나 후진적이어서 유럽 개입이 필요한 사회란 (규정하는) 내러티브에 이용됩니다. 오리엔탈리즘 장르화는 유럽 식민주의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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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특징
1. 초기 작품
뮐러는 주로 자연주의적 접근을 통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풍경을 그립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세밀한 관찰에 기반한 리얼리즘과 사실주의 특징을 드러내었고, 전통 유럽 미술 스타일에 뿌리를 둡니다.
2. 이집트(오리엔탈) 장르화
뮐러는 빛과 색채를 통해 이집트의 강렬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포착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합니다. (이집트의) 강렬한 태양빛과 그림자, 현지인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사실적이면서 낭만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으며, 뮐러의 위치를 확고히 합니다.
3. 초상화
뮐러는 계속해 새로운 방식과 주제를 탐구합니다. 특히 그의 초상화는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 복잡한 색채, 깊이 있는 인물 묘사를 보여줍니다. 뮐러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추가로 탐험해 예술의 폭을 넓힙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오리엔탈리즘(중동, 북아프리카 등) 장르화(대중 생활 장면)*라는 느낌이 어느 정도 다가옵니다. 하기 그림들 감상해 보실까요?
* 유럽 식민지 확장 시대에 탄생해 본질적으로 식민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우리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_1일 1클래식
+ 출처
[1] 위키피디아: Leopold_Mü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