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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Oct 25. 2023

꽃을 주는 건 역시 위험하다

1. 우리 집은 화분이 여러 개 있는데
화분마다 물 주는 주기가 다르다.
몬스테라는 물을 한 달에 한두 번만 줘도 되지만
스킨답서스는 일주일에 한 번은 줘야 된다.
줄기가 잘려서 병에 꽂혀있는 꽃은
매일 물을 갈아줘야 된다.

하지만 똑같이 신경 써서 물을 주는데도
여러 색이 예쁜 데이지꽃과 이름도 잊어버린
작은 화분 하나는 오자마자 죽어버렸다.

꽃의 물 주기는 인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만 봐도 되는 관계.
일주일에 한 번은 봐야 되는 관계.

아마 나는 매일 물을 갈아줘야 되는
귀찮은 타입일 것이다.
주기가 맞지 않는 관계는 결국 끝나고 만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

2. 아빠한테 고마운 건 어릴 때 내가 꽃을 사거나
쓸데없는 애니메이션 사진엽서 같은걸 사도
그런 이유로는 한 번도 혼내지 않았던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는 꽃이나 애니엽서 같은
예쁜 쓰레기를 사는 걸 허용하는 게
참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갖고 싶은 게 생겨도
내가 이걸 벌려면 몇 시간을 일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순간이 아닐까.

3. 꽃을 받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믿게 된다.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좋아하면 더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의 클라이맥스를 봤다고 착각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꽃이 아니라 치킨을 사주거나
양말을 사준다고 그걸 믿지는 않을 거면서
꽃을 사주면 그 사람을 믿는다.

이 마음은 한치의 거짓도 없이 순수할 거고
나를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꽃을 선물 받는 건 역시 싫다.
사람의 마음이 꽃보다 짧을 때가 있다.
예전에는 꽃을 받는 걸 싫어했다.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4.
지금은 그래도 역시 꽃을
보는 것도 받는 것도 좋다
열흘 전에 결혼식에서 받은 꽃이
저렇게 오랫동안 살아남다니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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