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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Oct 11. 2024

차가운 숟가락을 준비하던 밤


차가운 숟가락을 준비하던 밤.



느 날 문득,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냉동실에서

숟가락 두 개를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종종 이게 필요했었다.


냉동실에는 항상 숟가락 두 개를 얼려놨다.

밤새 펑펑 울고 나서 눈이 심하게 부었을 때

아침에 눈뜨자마자 차가운 숟가락을 꺼내서

눈두덩이에 올려놓고 기다렸다.

삼사십 분 정도 올려놓으면 부기가 가라앉는다.


아주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숟가락을 눈에 대고

그런 우스운 꼴로도 눈물이 줄줄 날 때도 있다.

우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울어야 살 수 있을 때도 있다.

술도 담배도 커피도 못하는 내가

스트레스를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었다.


울면 뇌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서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울고 나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진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펑펑 울고 화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이 불행해도

내일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믿으면서 또 끔찍하게 똑같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때

돈을 벌기 위해 기분과 다른 표정을 짓고

구두에 발을 욱여넣고 씩씩하게 걸을 수 있을 때

어쩌면 겨우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슬프거나 눈물 흘릴 일이 줄어들었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눈이 적응을 잘 한탓인지

이젠 그런 게 없어도 빨리 울고 빨리 회복하는 것 같다.

이제는 울고 나서 삼십 분만 지나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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