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세상을 견디는 하루키식 방법

by 하루키
다운로드 (10).jpeg


의미 없는 세상을 견디는 하루키식 방법
―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를 읽고


비가 쏟아지고, 발은 진창에 빠지고, 길을 잃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 아토스 반도의 수도원을 순례하며, 그리고 터키 동부의 먼지투성이 24번 국도를 걷고 또 걸으며,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는 여정들을 기록한다.


책 제목처럼, 그의 여정은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시작해 ‘불볕천지 터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국경을 넘는 여행기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하루키가 어떻게 ‘의미 없음’을 견디며 살아가는가를 보게 된다.


그는 의미를 찾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걷는 사람이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단순하다. 관찰하고, 걷고, 받아들이는 것. 말하자면 그는, ‘살아있는 채로 견디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냥 걷는다

아토스 반도에서 하루키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삶은 낯설고, 침묵은 깊고,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 삶을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설득력 있다."


그는 세상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가만히 관찰한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해’ 대신 ‘관찰’과 ‘걷기’. 이것이 하루키식 세계 견디기 첫 번째 기술이다. 설명 불가능한 것들을 억지로 끌어안지 않고, 단순히 지나가게 둔다. 그의 방식은 아주 느리지만, 그래서 무너지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 웃기거나, 기억하거나

터키에서 하루키는 온갖 불편과 마주한다. 더위, 군인, 뇌물, 예고 없는 검문. 하지만 그는 투덜대면서도 결국 웃는다. “그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한”이라며, 모든 불합리를 이야기거리로 남긴다.


그는 삶의 불편을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그 불편을 언젠가 ‘웃기거나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꾼다. 의미 없고 피곤한 날들을 견디는 가장 강한 방법은, 그것을 이야기로 남기는 것이다. 소설가이기에 가능한 방식일 수도 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고통을 메모하거나,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글로 써두는 것. 그건 견디는 기술이다.


작고 쓸모없는 것들에 시선을 준다

하루키는 거창한 역사 유적보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문다. 반 고양이, 터키의 차이(홍차), 비를 맞으며 걷던 이름 모를 길. 그는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남는 것을 기록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크고 거대한 의미가 아니라, 작고 쓸모없는 풍경의 인상이다. 의미 없음을 이기는 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무심하게 붙잡는 관찰의 정성이다. 의미를 강박적으로 찾아 헤매기보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거기엔 어떤 무너짐도 통하지 않는다.


하루키는 결국 ‘버티는 사람’이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는 그가 어떤 사상이나 철학으로 무장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걸으면서 버티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비가 와도 걷고, 더워도 걷고, 아무 의미 없는 풍경이라도 걷는다.


그는 묻지 않는다. "왜 나는 이 길을 걷는가?"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걷고 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나도 그렇다. 요즘의 내 하루들은 목적이 뚜렷하지 않고, 특별한 의미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을 기록하고, 걷고, 살아낸다. 의미 없는 하루들이 쌓여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루키식으로 충분한

이전 06화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