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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Jul 13. 2020

[어른도 그림책] 삶의 결핍에서 필요한 것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글.그림, 시공주니어)

삶의 결핍에서 필요한 것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글·그림, 시공주니어)

 

❙ 넌 왜 일 안하니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려 일찍 나서야 할 것 같았지요. 오늘은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러 갑니다. 첫 날이니 그림책 토론은 어떻게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그리고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을 다함께 읽고, 맛보기 토론을 하려고요. 하지만 첫 날이니 쑥스러워할 수도 있겠어요. 그럼 제가 읽어드려야겠지요. 강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습니다, 제가 늦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레오 리오니가 작가가 된 이력은 순전히 손주들 때문이었지요. 그가 40대 후반이던 1959년, 손주들을 데리고 기차여행을 했습니다. 당시 레오리오니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때인데요.  그는 손자들이 기차에서 떠들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그림책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전합니다. 레오 리오니는 손자들의 소란을 잠재울 요량으로  ‘라이프(Life)지’를 꺼내 어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 주었다고 해요. 그러는 동안 주변의 어른들까지 모여 들어 레오 리오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레오 리오니의 첫 그림책 <파랑이와 노랑이Little blue and little yellow>(1959)였습니다. 이 그림책은 <뉴욕타임스> 최고 그림책상을 받기도 했지요.       


기차여행을 하다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북한이탈주민들은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얼른 그림책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림책을 목청껏, 목소리를 가다듬어 가며 읽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이처럼 그림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 그림책이래 이케 재미가 있네요.”     


<프레드릭>은 겨울을 준비하는 프레드릭과 들쥐들의 이야기입니다. 들쥐가족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식량을 모으는데요. 어머, 프레드릭은 뭐하나요? 혼자 감은 듯 감지 않은 눈을 하고 딴 짓만 합니다. 다른 들쥐들에게는 프레드릭 행동이 일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레드릭을 보고 들쥐들은 묻지요.


프레드릭, 넌 왜 일 안 하니?     


그런 들쥐들에게 프레드릭은 자신도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있다고 답하는데요. 추운 겨울이 오자 들쥐들이 모은 양식으로 겨울을 보냅니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양식은 동이 나고 마는데요. 그때 들쥐들은 프레드릭의 양식이 생각났습니다.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프레드릭?    


들쥐들이 묻자, 프레드릭이 커다란 돌 위로 올라가 자신의 양식을 보여주겠다는데요.     

 

❙ 프레드릭의 양식


“선상님, 프레드릭이래 양식이 뭘까요?”   

   

한 분이 프레드릭의 양식이 궁금한가 봅니다.  

    

Q: 네 프레드릭의 양식은 뭐였을까요? 들쥐가 양식을 모으듯 우리 사람들도 배불리 먹기 위해 일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배부름만으로 모든게 충족되지는 않거든요. 그럼 뭐가 필요할까요? 프레드릭이 모았던 햇살, 색깔, 이야기가 필요하기도 한데요. 여러분에게 프레드릭의 햇살, 색깔, 이야기와 같은 것은 어떤 것들인가요?

    

“아, 프레드릭의 양식에 해당하는거?”

“어, 뭐래 있을까요?”     

일순간 모두 프레드릭처럼 생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 선생님 제가 먼저 말해보겠슴다. 저한테 프레드릭이래 양식에 해당하는 것은 ‘사랑’인 것 같아요. 어 뭐랄까. 제가 여기 살면서 가족들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가족들이 저를 사랑해주고 또 제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저한테는 그게 가장 큰 힘이 되는 프레드릭이 양식인 것 같거든요.”     

“저는 ‘추억’이요. 여행 갔던 걸 생각하면 행복해지거든요. 그래서 추억인 것 같아요.”     

각각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레드릭의 햇살, 빛깔,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생사를 넘어 온 사람들이라 할 말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레오 리오니는 프레드릭을 통해 예술가의 삶을 보여줍니다. 다른 들쥐들이 일할 때 프레드릭은 늘 다른 방향을 보고 있지요. 함께 어울려 일하지 않고 언제나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사회에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이들은 누군가에게 지탄을 받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도 하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기 일쑤입니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다르다고 인정하기 보다는 틀리다고 부정해버리지요. 하지만 들쥐가족은 프레드릭의 삶을 일반인들과는 조금 다른 예술가의 삶으로 인정을 해줍니다. 너 틀렸어 말하지 않고 박수를 치며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며 인정해줍니다. 들쥐가족은 프레드릭의 햇살, 빛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았던거죠. 프레드릭의 다른 삶이 궁극의 결핍에서 희망을 안겨준다는 것을요.      


작가는 프레드릭처럼 궁극의 즐거움을 찾으면 어떻게니? 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호모루덴스’, 유희하는 인간으로 살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질문을 던지는데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합니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한 노동은 자본에 얽매이는 자발적 노예를 만들기 일쑤입니다.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새물결, 2013)에서 사람들에게 생산적인 게으름이 필요한 이유를 설파합니다. 신성화된 노동은 리바이어던처럼 사회 전체를 옥죄면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철저하게 지배해나갑니다. 이에 폴 라파르그는 하루에 세 시간만 노동해도 사회가 유지되는 데 무리가 없다며 ‘게으를 수 있는 권리’선언을 주장하지요. 이를테면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 호모루덴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프레드릭은 자존감 또한 높습니다. 들쥐가족이 시인이라고 인정해줬을 때 프레드릭은 “나도 알아”라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인사합니다. 이는 자신이 잘 하고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일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프레드릭은 우리 삶에 필요한 양식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는데요. 일상의 양식이 동이나 궁극의 결핍을 맞게 되면 그 안에서 찾게 되는 건 무엇인가요? 그림책은 질문하고 또 질문합니다. 북한체제에 익숙한 탈북이탈주민분들은 간혹 프레드릭이 혼자 있는게 못마땅하기도 합니다. 다같이 일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는데요. 같이 일하고 나중에 생각을 하면 안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저쪽 편에서 자연스레 다른 의견을 말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여기 남쪽에서는 우리때와는 다르더라구요. 여기는 아이들을 인정해주고 기다려주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그렇습니다. 삶은 예술로만 살 수는 없지만 예술가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 예술가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 다른거지요. 그 다름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어야겠지요.   

   

2시간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이제 토론 소감을 듣고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우리도 들쥐처럼 살아야 할 때도 있고, 프레드릭처럼 살아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삶 방식 모두 필요하고 중요한거 같습니다. 만약, 내가 그 중 한 가지 방식의 삶만 살 줄 안다면, 그때는 '함께'가 필요한 순간이지 않을까요. 가족, 배우자, 친구, 그 밖의 공동체에서 꼭 다른 역할을 해줄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 이 도서관에 와서 이렇게 그림책 토론을 하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들쥐들이 프레드릭과 싸우지 않았다는 점이고, 두번째 놀라웠던 점은 프레드릭이 마지막에 "나도 알아"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존감 높은 프레드릭과 프레드릭을 인정할 줄 아는 들쥐들을 모두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처음 읽었지만 집에 가서 5학년 딸과 함께 큰소리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프레드릭이 매력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프레드릭이 고생하는 들쥐가족은 나몰라라 하고 탱자탱자 노는 것 같아 살짝 얄밉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토론을 하고 나니깐 프레드릭이 멋져 보이고 나도 프레드릭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들쥐들이 서로 견제하지 않고 나누어 먹고 먹을 것이 다 떨어졌을때에는 프레드릭이 들려주는 시를 들으며 배고픔을 달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림, 이거이 꼴라주 기법이라고 했나요. 이거이 좀 독특해 보였습니다.


레오 리오니는 “내가 일생 동안 한 여러 가지 일 중, 그림책보다 더 큰 만족을 준 것은 없다.”라고 말했지요. 그림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하는 시간보다 더 큰 만족을 주는 것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림책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프레드릭이 탈북이탈주민을 찾아가 갔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이들과 어떻게 만남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또 다른 이들을 만나 프레드릭은 묻겠지요.      


“당신의 삶이 결핍으로 허전할 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Q: 겨울이 다가오자 들쥐들은 옥수수, 나무 열매 등 겨울 양식을 모으느라 밤 낮없이 일을 합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일을 하지 않는데요. 이에 들쥐들은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프레드릭은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에게 프레드릭의 양식인 햇살, 색깔, 이야기와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겨울이 다가오자, 작은 들쥐들은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들쥐들은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 빼고 말입니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들쥐들이 물었습니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이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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