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은 왜 그림책을 읽을까
그림책의 이중 독자
그림책은 태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수준과 연령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림책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다른 두 사회에 속해 있는 보기 드문 텍스트이며, 성인 문학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책은 어린이와 성인 모두를 위해 만들어지며, 어린이와 성인이라는 이중 독자 수준에서 소통한다.(Nikolajeva & Scott, 2011; 48)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독서를 조절하는 역할만 수행하지는 않는다. 많은 그림책은 다양한 수준의 독자를 고려하고, 그 독자는 어린이들부터 그보다 정교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성인을 포함한다. 그 성인을 이중 독자의 수신자라 할 수 있다.
성인들이 그림책 독자로써 갖는 역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어린이에게 책을 전달하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이다.(엄혜숙, 2002; 46) 국내에서는 그림책의 성인 독자로 어머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책을 읽을 때 어머니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그림책의 성인 독자는 주로 그림책을 읽고 어린이를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부모·놀이방 교사·유치원 교사·학교 교사·도서관 사서 등으로 자신과 가까운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에서 그림책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외 그림책 관련 일을 하다가 그림책의 성인 독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둘째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적 즐거움 및 예술적 경험을 추구하는 ‘그림책 독자’로서의 역할을 한다.(엄혜숙, 2002; 49-50) 그림책은 다양한 수준의 독자, 즉 읽기 능력, 지식, 삶의 경험, 유머 감각 등이 모두 제각각인 독자 누구라도 수용한다. 성인들은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매개자 역할을 해 왔다. 성인들은 어린 시절을 벗어나서도 자신의 문학적 기호와는 상관없이 ‘부차적 독자’로 그림책을 읽어왔다. 하지만 성인이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부차적 독자가 아닌 자신만의 문학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독자’로서 그림책을 향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성인이 그림책 독자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어린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안내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다 그림책에 매료되어서다.
그림책은 1차 독자를 어린이로 상정함으로써 따르는 조건과 제약이 있다. 어린이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성인에 비해 생활 경험의 폭이나 인식 수준이 제한적이고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2차 독자인 성인은 그림책을 읽을 때 다양한 삶의 경험과 스키마로 현재 처한 상황이나 나이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의미를 재조직한다. 성인들은 짧고 단순하게 보이는 그림책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보다 복잡하고 보편적인 은유로 그림책을 읽는다. 그림책을 어린이는 그저 재미있게 읽는다면 성인 독자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실패와 좌절, 고난과 역경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아정체감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그림책 성인 독자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낸다.
성인이 그림책을 읽는 이유
해가 갈수록 그림책을 찾는 성인 독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오롯이 자신을 위한 그림책 읽기를 하는 성인들은 왜 그림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림책은 성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며 삶에 위안을 준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실제로 그림책 토론을 하다 보면 간혹 눈물짓는 어른들이 있다. 그림책에 감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림책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없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중년의 독자들은 자녀의 독립, 배우자의 은퇴, 부모세대의 부양 등에서 오는 상실감, 고립감, 불안감,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불안정한 시기를 그림책의 그림 한 장에 기대어 위로를 받는다. 그림책은 단순한 형식에 풍부한 내용, 다의성을 갖추고 있다. 짧은 글과 그림에는 인간의 기본 욕구들이 표현되고 삶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처럼 삶의 한 단면을 압축해서 잘 보여주기 때문에 성인들은 그림책 성인 독자가 된다.
최근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 출간되기도 한다. 시니어 그림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되는 그림책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림책은 어린이를 1차 독자로 한다. 성인들은 어린이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된 그림책에서 유년시절을 읽고, 성인들의 걱정과 생각, 희망을 읽기도 한다. 그림책 성인 독자는 그림책 속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현재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린이가 숨어 있고, 그 어린이가 놀기를 바라고 있다. 아홉 살이든 아흔 살이든, 나이와는 상관없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어린이. 놀라고 의문을 품고, 감동하는 능력을 결코 잃지 않는 어린이. 상처 받기 쉽고, 들판에 내버려진 몸으로 고하고, 위로를 구하고 희망을 품고 있는 우리의 내면에 어린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또 레오 리오니는 “나는 솔직히 어린이들을 위해서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의, 다시 말해 나 자신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내 친구들 안에서, 지금도 어린이인 부분을 위해서 책을 만드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그림책은 만들어질 때 이미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그림책의 수신자로 성인 독자의 이중 독자 성립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 성립이 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성인들이 그림책을 읽는 이유는 그림책은 인생에서 겪은 원초적인 희로애락을 다루기 때문이다. 성인 독자는 삶의 일상에서 겪는 문제와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갖는 감정을 그림책을 통해 대리 경험한다. 이런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 증진과도 연결된다. 그림책 토론을 하다가 타인, 특히 부모인 입장에 있는 독 자은 자녀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게 된다. 이는 그림책이 표면적으로는 단순하고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사회적 이슈에서부터 어른들의 삶, 사랑, 죽음 등 깊이 있는 사유가 필요한 주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재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긴장에 심리·정서적으로 휴식을 제공하고 인간성 회복과 유년시절의 회상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불어넣는다.
어른인 당신이 그림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