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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한다는 건

오목 필승법을 깨닫는 이치

by 하루만

"나랑 오목 둘 사람?"

요즘 오목에 빠진 둘째가 매일 같이 오목을 두자며 가족들을 조른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오목 생각밖에 없는 둘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쉰다.


"너 그러지 말고 바둑학원 다녀봐. 오목학원은 없으니까 바둑 쉬는 시간에 오목 둘 거야."

"무슨 소리야? 오목대회도 있고, 국가대표도 있는데."

아이와 겨우 오목 한 판 두고는 뻗어 누운 남편이 내 말은 냉큼 받아친다.


"엄마, 난 바둑은 싫고 오목만 배우고 싶어."

둘째는 스스로 오목을 배워보겠다며 나에게 유튜브 시간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배울 게 있기는 한 건지 설거지를 마무리하는 동안 방에서 잠잠하던 둘째가 한껏 들든 목소리로 날 부른다.

"오목에 무적수라는 게 있어!"

외할아버지와 오목을 둘 때 할아버지가 쓰신 기술이라고 했다.


무적수는 먼저 두는 흑돌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크게 화월, 포월, 운월 3가지로 분류되는데 둘째는 그중 난이도가 가장 쉬운 화월의 예시들을 익히고 있었다.

"엄마, 이렇게 삿갓모양을 만드는 거야."

직접 오목 판에 흑돌과 흰 돌을 번갈아 놓으며 아이는 내게 설명을 했다.


삿갓모양은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드는데, 거기서 파생되는 루트가 어마어마해서 상대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 혼자서는 이걸 다 해볼 수가 없는데.."

둘째는 또 울상이다. 무적수의 기술을 익히려면 화월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만 해도 얼마나 많을까.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빌드업하려면 오목을 몇 달을 같이 둬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여기 오목 게임앱이 있네."

같이 오목을 두다 지친 나는 플레이 스토어에서 구세주를 발견했다. 게임을 깔아주자 아이 얼굴이 환해졌다.


'휴, 다행이다. 이제 해방인가?'

안도하며 책을 집어든 지 얼마 안 되어 게임에 빠져있던 아이가 코를 팽 풀며 방에 들어간다.

"왜 그래? 게임이 잘 안 되니?"

"아니, 저 사람이 자꾸 이상한 수법 써서 내가 지잖아."


오목을 같이 둘 사람이 없어 울고, 게임에서 진다며 우는 아이의 눈물은 자신이 속상한 만큼 그만큼 더 뜨겁다.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난다.


"적당히만 하면 되지."

언제부턴가 한 발 물러난 채로 보통의 선만 지키고 살아가던 나였다.

"난 내 분야에서 1등을 하고 말테야!"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나는 불안했던 사람이다. 독기라던지, 야망이라는 말은 너무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얼마나 더 벌 수 있어?"

좁은 집의 상황이 날 종용하며 내 안의 능력치를 더 찾아보게 만든 것이지만, 그로 인해 나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하지?'라는 고민을 계속하게 됐다.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도,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에도 시간을 들이고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잘하고 싶어진다.


"와, 선율이 이렇게 좋았어?"

악기를 꺼내 들고 언니와 함께 연주할 곡을 초견으로 읽어보는데 웬걸 가슴이 뛴다. 연습할 시간을 내기란 매번 빠듯하지만, 음악 프로듀서나 다름없는 언니의 터치에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이 어우러진다.


"아, 이거 진짜 어떻게 하지?"

뒤늦게 SNS계정을 파고 영상을 만드는데, 어떻게 할지 뒤척이며 고민하느라 잠을 쉬이 못 든다. 해보지 않은 일들이라 거의 실패나 다름없는 실행은 보이지 않는 투명 레이어를 쌓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자신의 선택과 고집에 충실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며 유연하게 자기를 바꾸어갈 용기를 가진 사람,

그런 겸손함과 강인함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삶을 얻으며 나아간다.

[돈 말고 무엇을 가졌는가], 정지우



잘하고 싶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는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뜨거움을 회복하려면 나는 연주채널을 만들 용기를 내야 하며, 나만의 색을 가진 계정이 완성되기까지 포기하지 않을 담대함이 필요하다.



아이와 오목 한 판



"삿갓모양 안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가 몇백 개라고 치자. 그걸 다 경험하고 체득해야 이길 수 있겠지?"

오목을 두다 말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응, 그러니까 엄마가 같이 해줘."

"엄마가 같이 해줄 때도 있지만 못 그럴 수도 있어. 그럼 넌 어떻게 할래?"

"혼자서라도 흰 돌, 흑돌두면서라도 배워야지 뭐."

나는 아들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삶도 그런 거야. 혼자서라도 몇 백 개의 실수와 실패를 온전히 배워야지만 돼. 그러면 그 쓰라렸던 순간들이 너의 삶을 더 열렬히 사랑하도록 만들어줄 거야."


지금 내가 잘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도전과 실패야 말로 삶을 사랑하는 기술 아닐까.

"난 자신 있어. 밤을 새워서라도 다 끝장낼 테니까!"

아들의 단호한 말에 난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아들한테 배워야겠네. 뜨겁게 사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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