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해가 어디로 숨었는지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이다.
"얘들아, 비가 올지도 모르니 일단 우산 챙겨가."
아침을 먹고 등굣길을 나서는 아이들을 배웅하며 말했다.
"엄마, 비 온다고 해서 우산 들고 간 게 벌써 몇 번째인 줄 알아?"
둘째는 쓸 일 없는 우산을 또 챙긴다고 투덜거리며 집을 나선다.
"날이 흐리긴 한데, 비가 참 안 오긴 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2주 동안 정말 비만 내리는 게 장마였는데..'
시원하게 내리던 그때의 빗소리가 그리워진다.
요즘 장마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손님말이다. 잔뜩 찌푸린 무더위 속에 비는 스콜처럼 쏟아지곤 금세 뚝하고 그쳐버린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우산을 학교에 두고 하교하던 첫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홀딱 젖어온 적이 있다.
"집이 너무 더워. 벌써 이렇게 더우면 8월에는 어떡해?"
더위에 취약하신 우리 집 큰 아들, 남편은 여름을 날 걱정에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닌다.
"하필 에어컨까지 고장이니 진짜 큰일이야."
금방 더워지는 좁은 집에서 냉기 없이 못 자는 남편과 몸에 열이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나도 걱정이 한 보따리다.
'에어컨 없던 시절엔 어찌 살았나몰라.'
손을 대면 찬기운이 느껴지는 냉감이불이 요즘 유행이지만, 난 어릴 적 여름이면 빳빳하다 못해 모서리가 딱딱해진 삼베이불을 덮었다. 할머니는 몸에 부드럽게 감기지도 않는 이 불편한 이불은 매년 여름마다 어김없이 풀을 먹이셨다.
부엌에서 밀가루 풀을 끓이는 냄새가 난다.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도 아닌데 커다란 은색 대야도 등장했다. 장롱 깊숙이 잠들어있던 삼베이불은 풀이 담긴 은색 대야 안으로 들어가 밀가루풀과 함께 푹푹 주물러진다. 바로 풀을 먹이는 작업이다.
"야야, 이쪽 좀 잡아라."
옥상에 올라간 할머니는 며느리인 엄마와 함께 풀을 먹인 삼베이불 끝을 잡고 꼭 짜기 시작하신다. 거친 삼베에선 뚝뚝 미색의 풀들이 떨어진다.
그렇게 빨랫줄에 걸린 삼베는 완전히 건조되기 전 촉촉함이 남아있을 때 다시 걷어들여야 한다. 집 거실에 넓게 펼쳐진 수건 위로 차곡히 접은 삼베가 올라간다. 수건으로 단단히 감싼 뒤, 할머니는 그 위로 올라가셨다. 주름진 할머니의 맨발이 수건을 꼭꼭 누르며 옮겨 다닌다. 구석구석, 모서리까지 정성 들여 밞는 모습은 마치 성스러운 삶의 한 의식 같아 보인다.
할머니는 수건으로 두 번을 밞아야 성에 차셨는지 그제야 다림질을 시작하셨다.
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방마다 이불을 넣어줘야 하니 이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을 테다.
정말이지 할머니의 사랑은 유달랐다.
6.25 시절 피난을 내려와 먹고살기 위해 달걀과 이것저것을 팔았다던 할머니는 뚝심이 대단한 여성이셨다. 대장부스타일에 애살은 얼마나 많았는지 잠시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태가 달랐다고 나는. 다른 애들처럼 옷이 후줄근한 적이 없었어."
가족들이 모여 옛 추억을 나눌 때면, 아빠는 목소리를 높이며 그 시절 교복 이야기를 하셨다.
새 옷을 사주진 못하지만, 정성을 다해 빳빳하게 다린 셔츠는 할머니의 매일 같은 사랑이었다.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할머니가 그러신 거야."
그런 정성을 먹고 자라서인지 아빠는 언젠가 자신은 뭔가 해낼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여름마다 풀 먹인 삼베이불을 덮은 나는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고스란히 받은 셈이다. 가정 안에서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십여 년 동안 아이에게 전해진 사랑의 위력은 위기의 순간에 작동된다. 그것이 나에게 휘몰아치던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천국에 계신 할머니도 이런 나를 보고 계시겠지?
감사해요. 할머니!
그리고 사랑해요.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풀 먹인 여름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