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자아의 우위
"엄마, 방학인데 어디 안 가? 다른 애들은 여행 간다고 하던데."
물질적 여유뿐 아니라 심적 여유도 전혀 없는 상태로 여행을 가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는 여름방학의 묘미로 여행이 절실하다.
"풀예약이네. 어디 한 곳도 빈자리가 없어."
숙소를 알아보던 남편이 지쳐 핸드폰을 손에서 놓았다.
"그럼 부산이나 가자. 엄마도 보고."
이왕 이렇게 가게 된 거 "맛집 영상 뿌시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체험단 클립 모집 중 내가 할 수 있는 날짜의 마감임박 신청을 후다닥 마쳤다. 감사하게도 3개의 클립 체험단에 선정되었다. 내가 가게 될 곳의 메뉴가 정해졌고, 그 메뉴로 만들어진 릴스를 찾아보며 어떻게 찍을지 계획을 세웠다.
퇴근하고 나니 8시가 넘은 시각. 김밥 한 줄을 사들고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거세지는 비에 놀라다가 또 갑자가 나타난 마른땅 위를 달리더니 새벽녘이 돼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생각지도 않은 부산행이었는데 그다음 날부터 난 부산과 사랑에 빠졌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떠나 있은지도 벌써 20년이다.
"우리가 지금 여행 갈 정신이 어디 있어."
라고 차갑게 말했던 사람이 수평선 위 해무가 낀 바다 앞에 서서는 감탄사를 지겹도록 쏟아내며 사랑을 고백한다.
여행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사랑에 빠진 부산의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며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대던 게 전부다.
왜 이렇게 우리는 사진과 영상을 찍겠다고 안달일까? 지금 시작한 SNS 때문일까? 그런데 나 말고 여기 부산에 놀러 온 사람들은 모두 나와 똑같이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제시한 개념이다.
경험자아
- 지금 이 순간을 실제로 느끼고 경험하는 나
(예: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나)
기억자아
- 경험이 끝난 뒤, 그것을 기억하고 평가하는 나
(예: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때 참 행복했지"라고 떠올리는 나)
사람들은 의외로 '경험자아의 행복'보다 '기억자아의 행복'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실제 경험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걸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예: 여행 중 힘들고 피곤했어도, 마지막 날 멋진 석양 사진을 남겼다면 그 여행을 "정말 좋았다"라고 기억함)
이 사실이 왜 중요한가?
피크앤드 법칙
- 사람들은 경험 전체가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마지막 순간(엔드)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자아는 '전체 경험'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평가가 실제 선택을 좌우하게 된다.
소비와 선택에 영향
- 우리는 "경험자아가 행복할 선택"보다 "기억자아가 좋아할 선택"을 더 자주 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 인생샷을 찍고 기록한다.
그러니 다들 SNS에 인생샷을 찍어 올리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기억하기 위한 현상인 셈이다. 나 또한 부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어떻게 구성해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지 고민한다.
나에게 SNS는 '기억을 저장하는 플랫폼'이다. 일상을 기록하기로 했던 나는 이제 부산여행을 통해 행복을 기억하기 위한 콘텐츠 발행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됐다.
1. 기록을 쌓아 '아카이브 자아'를 만들자
-꾸준히 사진, 글,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면 SNS는 곧 나의 기록보관소이자 디지털 자서전이 된다.
2. '보여주기식 기록'보다 '나의 해석'을 담자
- 단순한 인생샷은 누구나 올린다. 하지만 나만의 시선이 담긴 기록은 나의 색을 만들어준다.
p.s.인생샷 건지고 싶은 분은 부산으로 가세요!
부산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다 예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