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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15. 2024

내 남편은 요리연구가

#1 


33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고스란히 차 안을 달궈대는 8월 초다.


가족들과 양양을 다녀오는 길주말에다 여름휴가철이라 복잡했다. 강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살짝 머리가 아파지려는 타이밍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가 대뜸 말을 던졌다.


"오늘 저녁은 꼬리곰탕을 해 먹자. 가는 길에 홍천 들러서 꼬리만 사가면 될 거 같아."


'헉'

순간 머릿속에 딸깍하고 필름카메라 셔터가 눌러지고 아일랜드 서진이네의 꼬리곰탕이 보다.


그러면 그렇지. 서진이네를 시청했던 순간부터 나는 곧 저 음식들을 먹게 될 줄 이미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더위에 지치고 막히는 길에 짜증까지 나 있지 않은가.


'먹는 게 뭐 그리 중해? 오늘은 제발 도착해서 편히 쉬자!'

목까지 올라오는 말을 간신히 삼킨 채 다정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여보, 안 피곤해? 계속 운전했는데 언제 꼬리사서 피 빼고 그거 끓여 먹겠어? 게다가 이 더위에!"


"금방 하지~! 난 하나도 안 피곤해. 이건 곰탕이랑은 달라서 3시간만 하면 돼."


겨울마다 불 앞에서 6시간씩 3차에 걸쳐 곰탕을 끓여대는 분이라 더 이상 반박불가다. 기가 차서 입이 벌어진 채로 그를 쳐다만 볼 뿐.




매끼 저녁은


그의 입에서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메뉴가

떠오를 때 정해진다.


본인이 요리하든 사 먹든 꼭 그 음식을 먹는다. 결정된 메뉴를 눈앞에 펼쳐두고 한 입을 먹을 때, 사르륵하고 그날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며 곁들이는 한 잔의 술로 흥이 오른다는 그다.


지금은 요리에 갖은 정성을 다하지만, 신혼 때부터 칼을 잡고 주방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고기 굽는 것에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사업을 시작하며 사람들 만나랴 술자리 하랴 강남맛집다 꾀고 다니던 그는 그저 입만 고급인 맛잘남이었다.


맛에 까탈스럽던 그가

30인분 요리도 거뜬히 해내는 요섹남이 된 것은

불과 4년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온 이후의 일이다.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단어만 들어도 덜컥 겁이 나는

그놈의 코로나말이다.

제길..




어쩜 저리 뽀얄까. 내 남자의 곰탕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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