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쌓기라는 명분으로 평일엔 술자리 후 늦은 귀가를, 주말은 침대에서 꼼짝 않고 누워 지친 간의 회복과 고갈된 에너지원을 채울 따름이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요섹남을 부케로 갖게 된 걸까?
따져보면 4년 전 이 사건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2월 4일
"귀하의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차가 들어왔다는 알림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나는 벌떡 일어나 벽에 붙은 홈패드를 확인했다.
"집에 왔다고?"
겨울방학 내내 친정이 있는 부산에서 지내다 첫째 봄학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며, 제발 하루만이라도이 집에서 나가달라고 남편을 내보냈던 게 바로 어제였다.
'흥, 겨우 하루 자고 들어온다고?
이 상황에서도 저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이거지?'
참고 있던 울분이 터지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떨어진 채 남편과 싸우면서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걸 정리했다 생각했는데, 불쑥 튀어나온 분노는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곧이어 나를현관으로 데리고 나가 씩씩거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잠시 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가 나타나자 나는어디에서 그런 괴력이 났는지 유아자전거를 냅다 집어던졌다.
"내가 들어오지 말랬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뱃속에서 들끓는 아우성을 뽑아내기라도 하듯 있는 대로 악을 질러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놀란 토끼눈에 얼굴이 벌게진 그가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들어가자. 집 안으로 들어가서얘기해"
그는 문 앞을 버티고 서 있는 날 슬쩍 밀어보다가 안 되겠는지 양쪽어깨를 꽉 쥐었다. 그새를 놓칠세라 나는 어깨를 틀며 머리로 그의 턱을 가격했다.
"미친놈아, 여길 네가 왜 들어와!"
원망이 가득한 나는 이미 못할 짓이 없었다. 떨어져 있으며 이혼을 선전포고 했고 폰을 끄고 대응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내가가장 원하는 것은 깔끔하게 이 사람과의 연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상태에서 제멋대로 구는 남편을 본 내 반응은 이제껏살아온 인생 중 가장 격렬했다.
"아우, 씨. 아파죽겠네.
야, 우리 아파트에 확진자가 나왔대.
우한폐렴. 너 그거 몰라? 코로나말이야!!!"
"뭐??"
미간을 찌푸리며 멈춰 선 채 금방 들은 단어를 3초 동안 다시 따라 말했다.
"코.로.나?"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했는데 아주 전파력이 강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한 학교가 마침 이틀 만에 문을 닫아버린 상황이었다.
"장난 아니니까 빨리 애들이랑 너 옷 몇 벌 챙겨서 나가자."
내가 당황한 사이 남편은 중문을 지나쳐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2주만 학교를 다니고 봄방학을 하면 남편과는 영영 볼 일 없이 애들과 친정이 있는 부산에 집을 얻을 계획이었는데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아빠다! 아빠 이거 봐봐라"
"아빠~~ 나 이거 변신이 안돼."
겨울방학 내내 보지 못했던 아빠를 발견한 아들들은 신이 났는지 앞다투어 말하며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얘들아,가져가고 싶은 장난감 챙겨. 우리 여행 갈 거야"
"신난다~며칠이나 자고 올 거야?"
둘째는아빠가 금세 차로 변신시켜 준 장난감을 신나게 굴려대며 물었다.
4주 만에 만남이 어색하지도 않은지 아빠와 장난치며 해맑게 노는 아이들의 꾸밈없는 표정을 보자 순간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애들 데리고 가. 난 안 갈 거니까!"
냉랭한 목소리로 반대의사를 표하자 캐리어를 펼치던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엄마 안 가면 나도 안 가."
남편이 나에게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걱정 많은첫째가 볼멘소리로 훅 치고 들어왔다.
"코로나확진자가 00구에서 1명 더 발생했습니다. 현재 한국에 확진자는 총 ×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