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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18. 2024

오지산골

#3

코로나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었다. 감염된 사람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완치될 때까지 격리되어 나오지도 못한다는 말에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내키지 않는 도피여행에 합류했다.


깜깜한 밤길에 굽이진 길을 한참 달리다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인제였다. 그는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며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곳을 골라 숙소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얘들아, 사우나 아직 할 수 있대. 갈까?"

"진짜? 아빠 같이 갈래"

"나도 나도"


남편은 마감시간이 임박했다며 방에 짐을 던져놓고 아이들과 부리나케 사우나장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짠해지다가 동시에 분노 섞인 원망이 치고 올라왔다.


'애들이랑 잘 놀아주는 척하기는!'


아이를 키우면서 언제 한 번 아기 기저귀를 갈아본 적도 젖병을 물려본 적도 없던 남편이다. 게다가 나 없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분인데 갑자기 왜 저러실까?


큰아들이 상처받을까 싶어 여행길을 따라나서긴 했지만 코로나 진행상황 속 수업재개여부에 따라 울학교 정리를 서둘러야 한다.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혼자 남은 온돌방에 이부자리를 펼치고 누웠다.


우 3일째였다. 겨울방학을 마친 아이가 학교를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서울집으로 다시 들어온 게 말이다. 사실 바로 전학을 할 생각이었는데 서울에서의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를 지어주는 것이 예민한 첫째에게 필요할 것 같다는 담임선생님의 조언 따랐던 것이다.  


베개를 베고 눕자 눈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가슴이 조여 오게 하는 남과 같이 있느라 온몸이 긴장해 있었는지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내가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라고 중얼거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재잘거리는 말소리에 깨어나보니 아침 7시다.


"엄마, 어제 엄청 피곤했나 봐. 우리 목욕하고 오니까 자고 있던 걸."


"새벽에 보니 끄응거리더라. 괜찮아?"

남편이 나에게 관심 꽤나 있는 척 걱정하는 말을 하기에 코웃음이 났다. 누구 때문인데 지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연기라도 하는 걸까. 본인 말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내 상태를 알고는 있는지 궁금했다.


난 일체 그와는 말을 섞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친정에 있는 동안에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삼시세끼 주는 밥 꾸역꾸역 먹으며 정신줄 놓지 않으려 애썼는데, 아무래도 날 놀라게 한 코로나 때문에 잠시 해이해진 거 같다. 정신 차려야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꽁꽁 언 냇가에서 세 남자는 놀기에 바빴다. 얼음 위에서 발을 구르던 아이들은 장난기가 발동해 아빠에게 조각난 얼음을 던졌고 공격당한 아빠가 잠시 멈칫해 있다 갑작스럽게 반격에 나서이들은 신이 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나 잡아보시지~"

발걸음 빠른 10살 첫째는 멀리 도망을 갔

"으앙.. 항복!"

4살 어린 둘째는 꽈당 미끄러져 우는 입술모양을 한 채 두 팔을 번쩍 든다.

"그렇다면 첫째 잡아라"

아빠가 방향을 휙 바꿔 달려가자 둘째가 같은 편 하겠다며 오줌싸개처럼 축해진 바지로 뛰어간다.

"요놈 잡았다"

첫째를 등 뒤에서 끌어안은 남편이 무차별 손가락 공격을 해댄다.

"깔깔깔 아빠 항복~~!!"

회색빛 무표정한 내 얼굴 위의 입꼬리가 슬쩍 움직인다.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부자의 모습이다.


세 남자의 뒷모습


'이런 것도 이제 마지막일 테지..'


아빠랑 노는 모습에 갑자기 첫째의 눈물이 생각나며 가슴이 저려왔다. 사실 학교 개학 이틀 전 부산에서 조심스럽게 첫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첫째야, 우리 3월부터는 부산에 와서 살자. 당분간 아빠는 못 만날 거고 외할아버지 집 근처로 이사 와서 살려고. 어때?"


언제나 듬직하게 엄마를 잘 돕던 첫째는 도대체 왜 그래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꼬치꼬치 캐묻더니 결국 내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왜 아빠랑 같이 못 사는 건데! 아빠~~!!! 엉엉엉"


그렇게 시작된 울음은 2시간이 지나도록 멈추질 않았다. 외할머니가 달래도 보고 가끔씩 볼 수 있다고 말해줘도 아이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빠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엄마가 봐주면 되잖아. 그냥 아빠가 사과하고 엄마가 용서해 주면 되는 거잖아!"


 던지듯 한 마디 내뱉더니 제 풀에 지쳤는지 첫째는 곧 잠이 들었다. 아이가 내게 던진 말 옳았다. 충격적 이게도 그게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삶의 정석이었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부모가 되어 말로는 가르쳤지만 삶으로는 다 보여줄 수가 없 것을.


코로나로 떠나온 도피여행이 소중한 추억이 되길 바라며 주저앉아 빨개진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슬며시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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