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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15. 2024

얼떨결에 시작된 도피여행

#2

2024년 마흔 한 살이 된 내 남자에게

이토록 끓어오르는 요리본능이 잠자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첫째가 태어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펼친 그는

인맥 쌓기라는 명분으로 평일엔 술자리 후 늦은 귀가를, 주말은 침대에서 꼼짝 않고 누워 지친 간의 회복과 고갈된 에너지원을 채울 따름이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요섹남을 부케로 갖게 된 걸까? 

따져보면 4년 전 이 사건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2월 4일 


"귀하의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차가 들어왔다는 알림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는 벌떡 일어나 벽에 붙은 홈패드를 확인했다.


"집에 왔다고?"

겨울방학 내내 친정이 있는 부산에서 지내다 첫째 봄학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며, 제발 하루만이라도  집에서 나가달라고  남편을 내보냈던 게 바로 어제였다.


'흥, 겨우 하루 자고 들어온다고?

이 상황에서도 저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이거지?'


참고 있던 울분이 터지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떨어진 채 남편과 싸우면서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걸 정리했다 생각했는데, 불쑥 튀어나온 분노 나의 이성을 마비켰고 곧이어 나를 현관으로 데리고 나가 씩씩거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가 나타나 어디에서 그런 괴력이 났는지 유아자전거를 냅다 집어던졌다.


"내가 들어오지 말랬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뱃속에서 들끓는 아우성을 뽑아내기라도 하듯 있는 대로 악을 질러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놀란 토끼얼굴이 벌게진 그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들어가자. 집 안으로 들어가 기해"

그는 문 앞 버티고 서 있 날 슬쩍 밀어보다가 안 되겠는지 어깨를 꽉 쥐었다. 그새를 놓칠세라 나는 어깨를 틀며 머리로 그의 턱을 가격했다.


"미친놈아, 여길 가 왜 들어와!"

원망이 가득한 나는 이미 못할 짓이 없었다. 떨어져 있으며 이혼을 선전포고 했고 폰을 끄고 대응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깔끔하게 이 사람과의 연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 마주한 상태에서 제멋대로 구는 남편을 본 내 반응은 이제껏 살아온 인생 중 가장 격렬했다.


"아우, 씨. 아파죽겠네.

야, 우리 아파트에 확진자가 나왔대. 

우한폐렴. 너 그거 몰라? 코로나말이야!!!"


"뭐??"


미간을 찌푸리며 멈춰 선 채 금방 들은 단어를 3초 동안 다시 따라 말했다.

"코.로.나?"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했는데 아주 전파력이 강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한 학교가 마침 이틀 만에 문을 닫아버린 상황이었다.


"장난 아니니까 빨리 애들이랑 너 옷 몇 벌 챙겨서 나가자."

내가 당황한 사이 남편은 중문을 지나쳐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2주만 학교를 다니고 봄방학을 하면 남편과는 영영 볼 일 없이 애들과 친정이 있는 부산에 집을 얻을 계획이었는데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아빠다! 아빠 이거 봐봐라"

"아빠~~ 나 이거 변신이 안돼."

겨울방학 내내 보지 못했던 아빠를 발견한 아들들은 신이 났는지 앞다투어 말하며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얘들아, 가져가고 싶은 장난감 챙겨. 우리 여행 갈 거야"

"신난다~며칠이나 자고 올 거야?"

둘째 아빠가 금세 차로 변신시켜 준 장난감을 신나게 굴려대며 물었다.


4주 만에 만남이 어색하지도 않은지 아빠와 장난치며 해맑게 노는 아이들의 꾸밈없는 표정을 보자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애들 데리고 가. 난 갈 거니까!"

냉랭한 목소리로 반대의사를 표하자 캐리어를 펼치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다.


"엄마 안 가면 나도 안 가."

남편이 나에게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걱정 많 첫째가 볼멘소리로 훅 치고 어왔다.


"코로나확진자가 00구에서 1명 더 발생했습니다. 현재 한국에 확진자는 총 ×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필 그때 틀어져있던 에서 코로나속보가 흘러나왔다.


"이래도 안 간다고? 빨리 짐 챙겨서 나와.

여기 있다 다 죽기 전에!!"

남편은 보란 듯이 큰소리를 치고는 방을 오가며 순식간에 가방을 꾸렸다.


'말도 안 돼. 지금 이 타이밍에 저 인간이랑 도피여행이라니. 이게 실화야?'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내 머리는 정지되어 오작동을 잃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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