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화장실에 간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다 문득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보는 거울인데 왜 하필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 이렇게 늙는 동안 난 무얼 하며 살았을까? 갑자기 수많은 질문과 후회가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려들어 나를 집어삼킨다. 20대 때는 왜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까,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들 사이에 이미 난 세상 모두와 함께 나이 들었고, 내 얼굴도 그 나이를 정직하게 아니 오늘은 조금 과하게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뭉크의 절규를 닮은 길쭉한 세로 모공들이 내게 물어왔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는 거냐고 아니면 마음이 없는 거냐고. 언제부터 인가 이마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두줄 주름도 목소리를 내었고, 신경 쓸 때마다 미간에 생기는 꿈틀이 애벌레도 이젠 디폴트 값으로 눌러앉아버렸다. 처진 볼은 손가락으로 살을 당기면 살짝 올라갔다 금방 중력을 증명하듯 아래로 쳐져 버렸다. 이렇게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50대의 얼굴 60대의 얼굴 70대의 얼굴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곤 10년 후에 이 얼굴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0대 30대의 얼굴로 돌이킬 수 없는 걸 알기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40대의 얼굴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제일 먼저 머리를 스친 것은 피부과였다. 하지만 전업주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소득 전문직도 아닌 평범한 워킹맘으로 피부과는 금전적인 면에서도 시간적인 면에서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다시 절망감이 밀려온다. 지금이라도 이 얼굴이라도 지켜보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천 원짜리 팩을 붙이는 게 전부였다. 그 마저도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조금이나마 짬이 나야 소파에 앉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어떤 때에는 그 마저도 내 체력과 영혼이 허락하질 않았다. 1일 1팩을 시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아마 애들이 없는 아가씨들 일 거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망가져버린 피부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현실 속에서 나는 한참을 헤매었다. 갑자기 눈에 띈 피부 문제가 마치 내 모든 인생의 결과물인 것처럼 무겁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지난 시간을 후회도 하고 나의 과거와 내가 했던 선택들을 원망해보기도 했다. 단순한 피부고민은 점점 커져 인생의 로드맵까지 확장되었다. 지나왔던 20대와 30대의 시간을 곰곰이 다시 한번 돌아보았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늙고 싶은 지도 그려보았다. 어릴 때야 가꾸지 않아도 젊음이 알아서 열일을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반짝이는 젊음이 사라지고 나니 무언가 휑하게 느껴지고 그제야 무엇이 빠졌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귀한 물건도 쓰레기 봉지에 들어가 있으면 쓰레기가 될 뿐인 것을. 음식도 예쁘고 깨끗한 그릇에 담아야 더 맛있어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자신을 가꾸는데 왜 이리 무심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피부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외모를 가꾸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피부과 시술이나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을 하든 오랜 시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과도 그렇고 1일 1팩도 그러하다. 오래 지속 가능하며 내가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피부 관리법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는 수만 수천의 조언과 경험담들이 넘쳐났지만 나에게 맞는 것인지는 내가 원하는 것인지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했다.
우선 화장대와 서랍에 처박혀 있던 언제 받은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샘플들과 쓰다 만 화장품들을 정리했다. 꼭 필요한 몇 가지 아이템만 남겼다. 간소해진 화장대를 보니 마음이 오히려 편안 해지고 벌써 무언가 해결된 느낌이 들었다. 1일 1팩은 어려워도 주간 2팩 정도는 실천해 보고자 간단한 팩들도 몇 개를 들여놨다. 미간에 주저앉은 꿈틀이는 아무래도 피부과의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아 주변에 괜찮은 피부과를 탐색해 보았다. 이외에도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 물 마시기, 과일 먹기, 술 덜 먹기 등등.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음먹은 것이 있다. 매일 아침 거울 속 나를 마주할 때 꼭 웃어 주기로 했다. 어쩌면 뻔한 마인드 컨트롤일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 소홀했던 나를 다독이기엔 충분할 것 같다. 삶에 찌든 표정이 아닌 스스로를 격려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얼굴에서 그 인생을 어찌 살았는지 나이가 들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의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았다. 여기서 더 주름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노화를 거부하지 않고 멋지게 나이 드는 연예인들 얼굴이 몇몇 떠오른다. 나도 그렇게 멋지게 늙고 싶고, 넉넉한 마음이 드러나는 편안한 얼굴이 갖고 싶다. 물론 거기에 주름도 별로 없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이 빠지진 않는다. 화장품을 줄이고 스스로에게 웃어주고 하는 방법들이 실제로 내 모공을 얼마나 줄여주고 탄력을 얼마나 유지해 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어느 날 폭삭 늙어버린 내 얼굴에 또다시 충격을 받을 수 도 있다. 하지만 미력하나마 내 방식대로 노력해 왔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한 격려가 더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그때에는 지금처럼 피부문제가 인생현타까지 확장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