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고통 속에 피어나는

신경림과 피카소가 그린 가난과 슬픔의 색, 그리고 예술의 힘

by 하루살이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Old_guitarist.jpg 파블로 피카소, <The Old Guitarist>, 1903-04

신경림이 그려낸 가난을 읽다보면 피카소의 <늙은 기타수>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친구를 잃은 피카소가 슬픔에 빠져 지내며 푸른색 계열로 작품활동을 하던 '청색시기'의 회화 중 하나인데요.(사실 친구의 죽음을 듣기 전부터 청색시기가 시작됐다는 설을 접했던 기억이 얼핏 나기도 합니다...) 과학 분야 진로의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마주했던 때 접했던 그림이라, 기억 속에 각인된 것 같습니다.


음울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파란 배경속 앙상한 거죽만 남은 감긴 눈, 깊은 주름의 노인이 마지막까지 기타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 화면 중앙에 뼈마디가 드러난 손가락들과 유난히 볼록 솟아있는 팔근육의 대비에서 현실의 암울한 상황들이 개인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예술혼, 목표에의 추구 같은 것을 느껴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강렬한 감정과 결합된 기억은 오랜 기간이 지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신경림이 그려낸 가난 속에서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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