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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03. 2018

일상에서 만난 좋은 콘텐츠들

#1. 낯설게 봤을 때 보이는 것들이 많아진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문체가 있다. 한때는 하루키의 문체가 좋아 괜히 툭툭 끊어 적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러쉬 설명서처럼 글을 쓰고 싶다. 브랜드 이미지처럼 세련되고 친절해 보인다. 몇 번 그렇게 써보려고 노력했는데 낯간지럽고 어색해 포기했다.




 가끔 좋은 글을 보면 사진을 찍어두거나 복사해서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 놓는다. 글이라는 건 읽히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그 깊이가 다른 것 같다. 휴대폰을 정리하다 본 요즘 일상에서 마주한 기분 좋은 글들!






#1. 취하라!


 우리 회사는 신규 입사자가 들어오면 전체 메일로 자기소개를 보낸다. 보통 전 직장에서 무얼 했는지, 어느 나라를 여행했는지 또는 내 애완동물이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매일 오기에 별 감흥 없이 읽다가 좋아했던 책 구절을 발견했다.



대학생 때 읽은 보를레르의 <파리의 우울>에 나온 구절이다. 잠깐 옮겨보면,


"취하라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하라.

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이 몇 시인지.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그대 좋을 대로.'"


 무심한 일상에서 본 '취하라' 구절이 가진 힘은 오랫동안 맴돌았다. 역시 대작은 문장 한 줄 만으로도 오랜 시간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구나.



#2. App store 소개글


 얼마 전에 핸드폰이 초기화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모든 어플을 하나씩 다시 깔아야 했다. 내가 그렇게나 많은 어플을 사용하는지 몰랐다. 당장 카톡도 해야 했고, 택시도 불러야 했고 또 모바일 결제도 해야 했다. App store를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들락거렸다. 그러다 본 게임 어플에 대한 추천 게시글이다.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 게시물을 클릭해서 보았다. 보통 게임 홍보글의 타겟은 게임을 즐겨하는 사람일텐데, '게임과 담을 쌓고 사는 당신' 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흥미로웠다. 애플스러운 저 문체까지! 러쉬 이야기도 잠깐 했지만, 회사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브랜딩 요소는 참 다양한 것 같다.



#3.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요즘 회의가 많았다. 금요일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했는데 무릇 모든 회의란 그렇듯이 딱히 결론은 없었다. 나는 마케터나 홍보 담당 직군은 아니지만 프로젝트 상 대학생들을 타겟으로 한 캐치프라이즈를 작성해야 했다. 이런 쪽 일은 해본 적 없는 팀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



 어차피 세련되게 만들지 못하니 직설적이게 가자며 우리 나름의 브레인스토밍도 했다. 그러다 나온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라는 문구. 최종 채택되진 못했지만 금요일 밤에 퇴근하지 못한 직장인들이 내놓은 가장 솔직한 문장이었다.



#4. 해가 질 때 도시는 수줍어 한다.


 예전 직업은 승무원이었다. 다양한 나라를 많이 다녔는데 단연코 해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였다. 해가 뜰 때의 싱그러움도 질 때의 따뜻함도 참 좋았다. 적당한 습기와 날씨는 그 도시의 사람들까지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샌프란시스코의 해질녘을 다룬 브런치 글을 보았다. 제목이 너무 좋아 링크까지 담아두었다.


'해가 질 때 도시는 수줍어 한다.'
 https://brunch.co.kr/@kyohnam/74


 



 한때 '낯설게 보기' 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관계든 일이든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좋은 글과 문장을 담기 위해 모든것에 너무 무뎌지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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