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독일인가 - 프롤로그 2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아직도 약간의 자선행위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자선(Philantrophy)에서 공유가치 창조(Creating Shared Value)로 이미 넘어왔다고 대학의 경영학 교재에 실린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우리 기업은 여전히 사원들을 휴일에 동원해서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연탄을 날라주고, 벽지를 발라주는 것을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것인 양 TV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진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자리”라는 공유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90년대 초에 이미 유럽 최대 기업인 폴크스바겐은 정리해고 대신 고용을 보장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페터 하르츠(폴크스바겐 개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노동이사)의 말을 좀 더 확장시켜 보자면, 모든 일자리에는 얼굴이 있고, 그 얼굴에는 무수한 측면이 있다. 거기에는 생계 유지가 있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이 들어 있으며, 자기개발과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있고, 가족들의 미래와 꿈이 있으며, 공동체의 안정이 들어있고, 그 안정 위에서 이루게 될 사회와 국가의 미래가 있다. 하나의 일자리가 갖는 의미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를 단순히 정책 관료에 의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일자리란 무엇이고, 돈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누구이고,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그것도 정책 담당자가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그러한 철학의 공유를 통해 이루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뒤에서 살펴볼 독일의 제도와 사례들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공감대가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공짜가 있겠는가. 아무런 철학적 고민없이, 엔지니어링(정책 조종)을 통해 책상 위에서 짜깁기되는 제도는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우리가 독일 노사관계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 관점 그리고 제도들을 제2장(왜 또 독일인가, 2016)에서 두루 살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