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독일인가 - 프롤로그 3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이 제도적 정당성을 처음으로 획득한 1987년으로부터 꼽으면 거의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1세기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대응하여, “세계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면서 ‘신노사관계 구상’을 천명했던 김영삼 정부가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설치해 협력적 노사관계에 대한 사회적 대합의를 이루고,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해가 1996년 이었다. 대통령 이름과 위원회의 명칭만 바꿔 놓으면 지금의 정부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그 주장의 배경설명과 내용이 흡사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김영삼 정부의 신노사관계 구상에서는 노사정의 역할에 대해 획기적이고 분명한 발상의 전환을 보이고 있다. 필자가 광주광역시에서 근무하면서 소위 “광주형일자리 모델”을 설계할 당시(2016.2.), ‘노동은 생산성과 기술혁신을 책임지고, 기업은 노동자의 고용을 책임지는 새로운 관계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모델의 실행계획에서 노동과 경영의 동시적 변화를 역설했는데, 이때 벌써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 있었으니 놀라운 일이다. 내용은 이렇다. ‘생산성과 품질관리, 기술혁신은 노동조합이 책임을 진다’, ‘고용안정과 고임금의 확보 등 복지향상은 경영이 책임을 진다’, ‘물가안정과 소득분배의 개선, 사회보장의 충실은 정부가 책임을 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노동법안 날치기 통과와 노동계의 총파업, 그리고 이어진 노동법의 재개정 등 일련의 일들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애초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노사가 그 현실적인 불가피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과 그러한 공감대가 사회적 합의로서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것은, 기업은 생산기반의 해외이전 대신에 국내투자 확대와 기존 일자리의 안정화에 노력하며, 노동조합은 임금감소를 감수하고 그 대가로 일자리를 보장받으며, 노동시간 유연화에 동의하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강화에 합의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의 입지 경쟁력을 강화하고, 정리해고를 회피했던 독일의 사례가 이미 20여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었는데 라는 안타까움이다.
생산성 향상분에 대한 노동자의 몫을 보장하는 공정한 분배가 바로 동반자적인 노사관계라고 하는 시각을 가졌던 김대중 정부는,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환경하에서 IMF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을 시행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노개위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시작되었으나, 법제화를 거쳐 사회적 협의기구로 바뀐 노사정위원회(1998년)를 통해서 김대중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신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상생의 노사관계를 조성하겠다고 노동부에 노동개혁추진단을 구성하는 등 노동개혁을 추진하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노동개혁을 추진하는데, 주요 내용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의 구축’,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십 형성’,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의 확립’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3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두뇌들이 여기에 투입되었고, 얼마나 많은 이론들이 언급되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시도들이 무산되었던가. 이제 다시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살펴 보았듯이 그 근본적인 내용은 이전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이 신노사문화, 노사상생, 사회통합, 동반자적 노사관계, 자율과 책임이다. 노사간에 보이는 주장의 대립도 그 옛날 그 장면 그대로이다.
노동이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하는 1987년 이후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노사관계는 얼마나 변했는지 노와 사가 한번 돌아 보기를 권한다. 20여년이나 지난 폴크스바겐의 개혁 사례를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노사관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생각부터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 문제에 있어서 우리보다 앞서 나간 나라들이 무엇을, 어떻게 고민했는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