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독일인가 - 프롤로그 4
새로운 기본전제를 세우는데 도움이 될 조언을 독일로부터 얻으려고 한다.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우리를 변화시킬 그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소중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상반기에 들어서면서 유로존 국가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독일은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중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이미 2010년 이후에는 유로존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탄탄한 경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물론 독일의 경제력에 비해 유로화의 가치가 낮기 때문에, 주로 수출로 성장을 하는 독일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것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어쨋든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8% 초반의 낮은 실업율을 유지하고, 성장이 없는 가운데도 고용률이 줄어들지 않은 것에 대해 전세계로부터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어 왔다. 경제성장이 정체 중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폴 크루그먼은 “성장없는 고용”이라면서 놀라워 했는데,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이것이 가능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뉴욕타임스, 2009.11.12.).
노와 사의 이해는 태생적으로 부딪친다. 이러한 관계에서 협력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다시 해야겠다. 이제 협력 이외에는 어떠한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왔다면, 노와 사는 어떻게 서로의 이해를 조정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도 폴크스바겐의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당시 폴크스바겐의 노동이사였던 페터 하르츠는 그의 저서(Peter Hartz, 1994 및 1998)에서 “감당 가능한 정도(Zumutbarkeit)”란 개념을 강조했다. 필자가 80년대 솔 출판사가 펴낸 “입장총서”라는 시리즈의 제목을 보면서 “아, 그렇지!”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나는데, 각자의 입장을 사전에 명확히 한다면 얼마나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페터 하르츠의 “Zumutbarkeit(감당 가능한 정도)”란 개념을 보면서 다시 되살아났다(‘감당 가능한 수준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 보겠다).
이를 포함해서 폴크스바겐의 단체교섭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어떻게 임금보전 없는 노동시간 확대에 노동조합이 동의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경제위기의 시기에 노와 사가 어떤 사안을 맞교환함으로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는지, 그 딜(deal)을 가능케한 구체적인 수단들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이러한 제도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정신적인 기반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