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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상인 Jun 27. 2024

독이 되기도 하는 높은 기대감

높은 기대는 진짜 인생을 살지 못하게 한다

<10미터만 더 뛰어봐>(김영식 지음)라는 책이 있다. 천호식품을 만든 김영식 회장이 IMF 시기 빚만 22억 원이었으나 이를 갚아나가며 재기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내가 어떻게"라는 말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돈을 많이 받는 일만 하던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냐는 생각을 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라는 건 비단 '돈'에만 국한해 적용되진 않는다. "대학을 나온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어?", "공부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이런 시험에 도전할 수 있겠어?" 등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위의 김영식 저자는 누구든 "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을 버리면 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인상적이라 생각해 이 책과 함께 <허생전> 속 허생의 모습을 통해 하단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https://brunch.co.kr/@hasangin21/60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내가 어떻게"라는 개념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이런 태도를 내려놓지 못하는 건, 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은 이것을 최근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 시작 전부터 '잘 안 될 것 같다'라거나 하는 도중 '이 길이 맞을까'라며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하는 것이나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는 것 역시 나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시작 전에 잘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혹시라도 잘 안 되었을 때 '그래, 잘 안 될 것 같았다니까'라며 내가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주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포기하게 되면, 그건 내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이 맞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누구보다 나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자기계발서를 읽고 강연을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해내지 못한 일들을 두고도 나에 대한 기대감을 잃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기대감'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실제 인생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보단 낫겠지란 식의 명확하지 않은 기대감은 내가 언제든 도망치기 위한 안전장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눈앞의 현실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면 그게 언제든 무너지고 말았다. 스스로에게 어떤 일을 기대한다는 건 자신의 능력을 높이 산다는 측면에서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늘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내가 그랬듯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그게 몇 번 반복되면 최근까지 내가 그랬듯 어떤 일에서든 최우선 순위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는 행위가 놓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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