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19세기 초의 위대한 정복자였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자기 자랑이 심한 것으로 유명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황제 자리까지 오른 것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초반에 나폴레옹의 위대함에 반해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나폴레옹의 자기 도취에 조금씩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려고 하고 주변 참모들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는 것에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에 나폴레옹에 우호적이었던 이웃 국가 왕족, 귀족들도 차츰 이런 나폴레옹의 성격에 지쳐 떠나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정치가 메테르니히는 이런 나폴레옹에 실망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나폴레옹의 적이 되어 그를 공격하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주변에 적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고 이것은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나폴레옹은 지나친 자랑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잃었던 것이다.
내 주변 사례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식이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는 사람, 이번에 비싼 외제차 샀다고 자랑하는 사람, 배우자가 빠르게 진급했다고 자랑하는 사람... 그걸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저 사람 참 꼴불견이다"
남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 평생지기 친구 이 정도일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직장 동료들이 진심으로 그 사람을 축하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기 자랑이 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첫번째 사람은 자기 커리어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책을 두 권이나 썼고, 첫번째 책은 베스트셀러로도 지정되었고 4쇄 발행까지 갔다고 늘 자랑을 했다. 연차를 쓰고 외부 강연을 다니기도 하였다. 그게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의 임원들은 회사 일은 뒷전이고 자기 개발에만 힘쓰는 사람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심지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모습,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 닉네임이 '퇴근요정' 인 것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두번째 사람은 자기 인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기업에서 이직해 온 사람이었는데 항상 대기업에서는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그 이야기만 했다. 그러면 그 회사에 남아있지 뭐하러 이직한거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같은 반에 모 대기업 총수 손녀가 있었다는 이야기, 자기 절친이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에 살아서 거기 자주 간다는 이야기, 가까운 사촌이 유명 연예인과 결혼한다는 이야기 등등 늘 대화 주제가 그런 내용들이었다. 자기 자랑이 아니라 자기 주변 사람 자랑을 함으로서 나는 그런 인맥을 가진 사람이다! 이걸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랑을 하고 싶어할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인정욕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가 수고해서 성취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받고 싶어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들이 이뤘다면 마치 내 성취처럼 느껴진다. 대리만족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빵빵한 지인들을 소개하면서 '나도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에서 인정 욕구가 잘 충족되지 않을 때 자기 자랑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즘이 심한 경우,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세뇌시키려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자랑의 유형은 다음이 있다.
- 돈 자랑 (이번에 드디어 강남 대단지 아파트 입주했어!)
- 자녀 자랑 (우리 아이가 영재라 초등학교 4학년인데 벌써 중학교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
- 지인 자랑 (내 십년 지기 친구 중에 대기업 회장 일가 손자 있어. 걔네집에도 몇 번 가봤어)
- 학벌 자랑 (내가 수능 때 전국 100등 안에 들었어.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 골라 갈 수 있었지)
사실 내가 잘한 것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싶을 수도 있다. 내가 불법으로 돈 모으고, 부정하게 좋은 학교 입학한 것도 아닌데 왜 이걸 드러내면 안되느냐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게 참 묘하다. 그걸 부러워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나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이미 얻은 사람에 대해 시기, 질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는 목사님은 부흥 강사로 활동하시는데, 본인 순서가 끝나고 다음 강사가 나오자 본인 때보다 두 배나 더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걸 듣고 나도 모르게 질투의 감정이 불타 올랐다고 한다. 그 날 기도하면서 믿음 좋다는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울면서 회개했다고 한다. 부흥 강사도 이 정도인데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자랑 끝에 불난다는 속담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랑의 끝은 불행으로 연결되었나보다.
예전에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을 읽은 적이 있다. 임꺽정 일당은 평안 감사가 당시 세도가였던 윤원형에게 바치는 뇌물이 든 수레를 급습한다.
온갖 보석, 비단을 얻게 된 임꺽정은 일부를 자기 누나에게 주었고, 누나는 동네에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또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큰 탈이 나고 만다. 이웃 중 일부는 비단을 받았음에도 임꺽정 누나 일가를 시기하였고 관가에 밀고하였다. 이 때문에 누나 가족은 몰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임꺽정은 본격적인 도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시기, 질투는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남이섬의 유래가 된 조선의 남이 장군은 28살에 대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던 간신 유자광은 왕이었던 예종을 꼬드겼다. 예종조차 남이를 시기하여 죽이게 된다.
신입사원 시절, 돈이 많기로 유명한 과장님이 계셨다. 본인피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택시회사 회장이 본인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직장은 취미로 다닌다고 본인 입으로 떠드는 그 과장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안전한 피난처가 있어서인지 늘 일은 대충대충이었고 돈은 물쓰듯이 하였다. 비가 갑자기 내리면 우산을 사서 부서원들에게 건내주고는 했다. 좋은 행동임에도 너무 자랑을 하다보니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집이 잘 산다고 소문이 난 경우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성과가 비슷한 두 사람이 있으면 집 잘 사는 사람이 낮은 평가를 받기가 쉽다. 희망퇴직 대상자 선발 때도 집 잘 사는 사람이 희생양이 되기 쉽다.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미안해하지도 않고 그 직원을 희생시키고는 했다.
나도 그런 편견에 희생양이 될 때가 있었다. 서울대 졸업하고 뭐하러 이 먼 거제도까지 일하러 왔느냐는 비아냥도 들었고 너 선배, 동기들은 고시 합격하고 떵떵 거리는데 너는 전표에 도장이나 찍고 있느냐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었다. 자랑한 적도 없는데 억울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심성이 못됐다. 남들만 그런게 아니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다들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끌어내리고 싶어한다.
정치인, 기업 회장 욕은 실컷 하면서도 그런 사람들과 혼인 기회라도 생기면 기를 쓰고라도 성사시키려고 한다. 강남 졸부, 일류대병 이런 소리는 하면서도 그 지역에서 살려고 하고 그 학교 들어가려고 기를 쓴다.
회사에서는 자기 자랑 안하는게 좋다. 다들 심성이 착하지 않기에 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괜히 남의 질투심 불러일으켜서 좋을게 없기 때문이다.
굳이 회사 사람들이 알게 할 필요 없다. 내 강점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현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