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내가 정말 싫어하는 같은 팀 직원이 하나 있다.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에 딴지 걸고, 내가 뭐 잘못하는게 있으면 팀원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일을 떠벌려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는 한다.
나는 신앙이 있다 보니, 아무리 다른 사람이 싫어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팀원은 도를 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요즘은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여서 더 얕잡아 보고 그러는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도 기분 나쁜 사건이 있었다. 그 팀원은 자기가 바빠서 그러니, 대신 내가 6월 27일 대강당을 예약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 예약은 두 달 전부터 시스템으로 접수가 되기에 나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캘린더 일정에 등록까지 하였다.
어제 한참 일하고 있는데 단체 채팅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가 부탁했는데 왜 6월 19일 대강당 예약 안한거예요? 챙기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잠시 후, 늘 그 팀원만 감싸고 도는 팀장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OO님! 지금 당장 회의실로 와보세요!"
회의실로 들어갔다. 2평 남짓한 회의실에는 팀장과 내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분위기는 시베리아 한겨울 마냥 냉랭하기 그지없다.
팀장은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어, 비슷한 유형인 그 팀원을 끔찍이도 감싸고 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팀장에게는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변명하려 든다고 벌컥 화를 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말하는 것이 현명할까? 시나리오1, 시나리오 2로 나누어서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지 설명하고자 한다
(나를 A, 밉상 팀원을 B라고 표현하였다)
-A씨는 왜 항상 그 모양이야?
-솔직히 제가 잘 기억나지 않아서 그러는데.. 저는 분명히 B에게서 6월 27일 예약으로 들었습니다.
-매번 A씨는 잘 기억하지 못해서 실수하잖아. 이번에도 또 그런거겠지. 뭐 안 봐도 뻔하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질심문 한 번 해볼까? 만약에 대질심문했는데 A님이 틀린 걸로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래?
-제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B님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러는건 아니겠지요. 제가 실수했나 봅니다.
-이제야 상황이 좀 파악되는건가? 도대체 왜 그렇게 허구한 날 틀리고 실수하는건데?
-제가 더 신경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나 봅니다. 요즘 일이 많다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변명부터 하는게 아니라 먼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게 우선 아닌가?
-죄송합니다. 제가 집중해서 꼼꼼하게 챙겨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웃고 있는거 아니야? 표정이 나를 비웃는 표정인데?
-그런가요? 제가 웃는 상이라 저도 모르게 그러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표정관리 하나 똑바로 못하는건지 원.. 그리고 요즘 AI로 챗봇 만드는 프로젝트에 빠져있지? 그거 오늘부터 손 떼.
-그 업무는 제가 애착을 가지고 하고 있는 업무인데..
-아..됐고..오늘부터 손 떼. 다른 업무들이나 제대로 해
- (한참 침묵) 네..알겠습니다.
-A씨는 왜 항상 그 모양이야?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분명히 B에게서 6월 27일 예약으로 들었습니다.
-매번 A씨는 잘 기억하지 못해서 실수하잖아. 이번에도 또 그런거겠지. 뭐 안 봐도 뻔하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상황에 대해 분명하게 확인하였으면 합니다.
-대질심문 한 번 해볼까? 만약에 대질심문했는데 A님이 틀린 걸로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래?
-제가 분명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방안에 대해서도 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조금 있다가 B님 불러서 확인해볼께. 그나저나 왜 이렇게 자꾸 실수하는건데?
-제가 그동안 업무 실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이 부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제가 실수한게 맞는지 먼저 규명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지금 웃고 있는거 아니야? 표정이 나를 비웃는 표정인데?
-저 웃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으시겠지만 저 웃지 않았습니다.
-사실 관계는 있다가 확인하기로 하고, 요즘 AI로 챗봇 만드는 프로젝트에 빠져있지? 그거 오늘부터 손 떼.
-팀장님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AI 업무는 중단하되 나중에 기회가 오면 다시 해도 될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일단은 손 떼. 지금은 다른 업무에 집중하라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
-네..알겠습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 1) 공손함을 잃지 않는 것, 2) 내 권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팀장은 끊임 없이 도발을 해 온다.
- 내가 실수했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데도 일단 내가 실수한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사과를 요구한다.
- 심각한 분위기인데 내가 웃고 있다고 나롤 몰아 세운다.
- 지금 하고 있는 AI 챗봇 업무에서 당장 손 떼라고 지시하고 있다.
순간 욱하고 팀장에게 덤벼들기 좋은 상황이다. 나도 이 상황에게 그냥 다 떄려치고 한 판 붙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었다. 아마도 퇴사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면 폭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공손함을 유지하자. 무조건 흥분하고 먼저 화내는 쪽이 지게 되어 있다. 냉정함을 유지하자. 먼저 팀장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게 사실이던 아니던 일단 인정하면서 팀장의 권위를 세워주라는 것이다.
"팀장님께서 지금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경함을 드러내는 단어는 쓰지 말자. 팀장을 자극할 수 있다. 불필요하게 팀장을 자극하게 되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X) 진상파악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O) 사실에 대한 확인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진상조사, 사실관계 이런 단어는 수사기관에서 행하는 조사 느낌이 든다. 더 순화한 언어를 쓰자.
(X) 저는 절대로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O)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 절대, 함부로, 반드시, 매우, 진짜, 굉장히 이런 단어는 강렬한 느낌을 준다. 되도록이면 팀장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완곡한 표현으로 드러내자.
(X) 무슨 근거로 제가 웃었다고 말씀하시는건가요?
(O) 저 웃지 않았습니다.
→ 무슨 근거로, 네가 뭔데, 잘 모르시나본데... 이런 표현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표현이다. 팀장이 아니라 친구 간에도 쓰면 안되는 표현이다.
팀장과 팀원의 관계가 지시를 기반으로 하는 상하 관계라도 일방적으로 내가 당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하지 않은 팀장의 말에는 분명하게 내 목소리를 내며 내 주장을 해야 한다. 그대로 당하기만 하는 것은 바보같은 태도이다. 한 두 번 받아주게 되면 팀장은 나를 만만하게 보고 '감정 쓰레기통' 으로 나를 대하게 될 것이다.
→ (X) 팀장님 말씀이 항상 옳지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 (O) 이 부분은 제가 맞습니다. 기록이 있는데 같이 보여드리겠습니다.
→ (X) 저도 모르게 웃은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 (O) 팀장님께서 그렇게 보셨을 수 있지만 저 웃지 않았습니다.
→ (X)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AI 챗봇 만들기 업무는 수행하지 않겠습니다.
→ (O) 팀장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업무를 하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AI 챗봇 업무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애착을 가지고 있고 꼭 성과를 내고 싶습니다.
→ (X)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신가요? 이건 선을 넘으시는 말씀인데요?
→ (O) 제가 실수한 것은 맞지만, '병신 같다'고 하신 말씀을 들으니 솔직히 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런 말 들으면 주먹으로 팀장 한 대 떄리고 그 날로 사표 쓰고 나가고 싶다. 그러나 사람이 기분대로만 살 수 있는가? 먼저 팀장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공감하면서, 그래도 그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내 기분에 근거하여 표현하자 (아이 메시지)
직장 생활을 하면 몸에서 사리가 쏟아져 내릴 정도로 내 감정을 숨기고 참아야 하는 순간이 많다.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 때려치고 싶은 욕구가 뿜어져 나올 때도 많다.
그럴 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배우자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바다로 떨어진 용암 마냥 내 분노는 급속도로 굳어져 버린다. 더러워도 내가 참아야지! 싶다.
내가 참아야 하는건 맞지만, 참아도 현명하게 참자. 내 주장을 충분히 하면서 공손함을 유지하자. 이게 말이 쉽지 절대 쉬운건 아니다. 많이 연습해 봐야 한다. 내가 과거에 팀장과 갈등을 겪었던 상황을 떠올리고 글로 적어 보자. 이 때 나는 어떻게 말했었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공손함을 유지하며 현명하게 내 주장을 펼치는 방법을 떠올리며 대화를 작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