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에 대처하기
진규는 승철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나름 학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전에 촌장과 함께 일했던 경험도 있던 사람이었다. 승철에게는 진규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때 승철에게 봉수가 떠올랐다. 봉수는 촌장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인물이었다. 일이 굼뜨고 꼼꼼하지 못해 실수가 많은 인물이었다. 자연히 이리저리 치이고 기를 못펴고 살고 있었다.
승철은 봉수에게 접근한다.
"너 언제까지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갈래? 이렇게 살다 나이 들면 이 마을에서 버림받겠지. 그 뒤에는 어떻게 살아가려고? 나만 믿어. 내가 너 지켜줄께.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봉수에게 있어서는 살면서 이렇게 나를 챙겨줬던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아가 되어 지금껏 결혼도 못한 채 외롭게 살아가던 봉수였다. "이 사람만 따르면 내 인생은 필 수 있을거야!" 봉수에게는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승철은 봉수에게 비밀업무를 준다.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해. 대단한거 아니야. 이것만 하고 넌 빠지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거야"
과연 그 비밀업무는 무엇이었을까?
며칠 뒤 마을회관은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봉수가 투서를 보낸 것이다. 그 투서에는 다음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는 이전 촌장댁 머슴으로 10년 간 일했던 유봉수입니다. 하진규의 악한 행실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저는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첫 번째, 하진규는 마을 기금을 횡령했습니다. 주민들이 마을 기금으로 낸 작물의 일부는 하진규가 몰래 빼돌려서 읍내 시장에 팔고는 했습니다. 저는 한 밤중에 그가 몰래 작물을 들고 산을 내려가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두 번째, 이 샘터마을의 어리숙한 처녀인 명희양을 자주 꾀어 자기집으로 몰래 데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건 분명히 악한 의도를 갖고 한 짓임에 분명합니다"
명희 이야기가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명희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 정신수준을 가진 스무살 처녀였다. 늘 행동이 어수룩했고 그런 명희를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딸처럼 걱정하고 아껴주고는 했다. 그런 명희에게 진규가 설마..마을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진규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말이다. 물론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진규 역시 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규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아버지이다.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에게 들어가는 약값은 만만치 않은 돈이었다. 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촌장이 개인적으로 가진 농산물을 빌려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절대 공금에 손을 댄 것이 아니었다.
명희 일은..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명희가 진규네 집에 있는 서양 인형이 보고 싶다고 해서 집으로 데려와 보여준 것 뿐이다. 이후로 명희는 진규가 가지고 있는 외국에서 온 물건들을 신기해했고 종종 보러오곤 했다. 그 뿐이었다.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그러나 이미 흥분한 사람들에게는 진규의 해명이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이들에게 진규는 이미 파렴치한이었고 죽일놈이었다.
명희 역시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바보라고 소문난 명희의 말을 들어주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진규는 외톨이가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을 뒤에서 바라보며 야비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승철이었다.
"이렇게 눈엣가시같은 녀석을 제거했구나"
승철은 뿌듯했다. 모든게 자기 뜻대로 너무나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문득 승철은 자기 인생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그의 인생은 너무나 비참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술에 절어서 집에 올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모습에 질려버린 어머니는 수시로 가출했고 그때마다 승철은 집에 홀로 방치되었다.
'이 놈의 집구석, 내가 보란듯이 성공해서 다 갚아주리라'
승철은 그때부터 성공에 대한 강박을 갖게 되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쳐했을 때, 아버지는 집주인에게 90도로 허리를 조아리며 제발 살려달라고 굽실거렸다.
'역시 권력과 돈이 최고야. 저 두 개를 위해서라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어'
축구를 잘했던 승철은 축구부가 있는 멀리 있는 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합숙생활이 시작되었고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그의 축구인생도 끝나고 말았다. 이후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루 12시간씩 독하게 일하던 그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고 고속승진을 거듭하였다. 불도저, 람보는 그를 칭하는 별명이 되었다. 저돌적이고 물불 안가리는게 그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배욕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샘골마을이라는 낙후된 곳을 현대화하라는 지시가 그에게 떨어졌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던 그에게 안성맞춤인 자리였다.
"그래! 나는 여기서 왕이 될거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꼭 보여주겠어!"
그 이후 진규는 집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나갔다가는 돌팔매라도 맞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다 자기를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기분이 느껴졌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걸까?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왜 봉수는 나에게 누명을 씌운걸까?" 솔직히 둘은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진규가 딱히 봉수한테 잘못한 일도 없었다. 그 때 봉수의 눈빛은 평소에 보면 어수룩하고 늘 땅만 쳐다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살기가 느껴졌다. 도대체 어떤게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그 때 승철이 진규를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도시에서나 접할 수 있는 고급 과자 세트가 들려 있었다.
"일단 나랑 이야기 좀 하는게 어때?"
"네..들어오시죠"
진규는 힘없이 승철을 맞이한다. 승철은 웃으며 그에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나는 솔직히 봉수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 중요한건 자네 처지가 딱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네"
"....."
"그렇지만 기죽지 마. 나를 한 번 믿고 따라오겠나? 내가 진규 당신을 구해줄 수 있어. 자네도 알잖나.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해! 지금 여기서 나는 황제 권력 못지않아"
진규는 승철의 팔을 잡고 애원한다.
"고승철 주사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이렇게는 못살겠어요. 저를 구해주실 분은 오직 주사님 뿐이십니다"
"이제야 내 힘을 알아보는건가? 그럼 앞으로 내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올 수 있지? 나만 믿으면 자네는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 나가서도 성공하며 살아갈 수 있어"
"믿고 말고요. 그저 지시만 내려주세요"
"그래그래. 일단 이 과자나 먹으면서 힘내라고!"
승철은 남을 굴복시킬 때 느끼는 지배욕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남을 굴복시킬 때 느끼는 지배욕이 가장 맛있게 느껴진다. 오늘 승철은 포식했다. 이걸 느껴보려고 이런 두메산골에 자청해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