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이간질로 고통받은 사람 중에는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도 있다. 인도와 다른 점은 누르하치는 명나라의 이간정책을 돌파하고 여진족의 왕국인 청나라를 성공적으로 건국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누르하치를 통해 효과적인 이간질 극복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사를 공부하면 오랑캐로 등장하는 민족들이 있다. 거란족, 몽골족, 여진족이다. 이 중 여진족은 최근까지도 한국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민족이다. 청나라의 지배층이 여진족이었기 때문이다.
여진족의 국가인 청나라(당시는 후금이라고 했다)는 누르하치라고 하는 여진족 추장이 건국한 나라이다. 여진족은 금나라라고 하는 중국을 지배했던 국가를 만든 적이 있는 민족이었다. 전투력이 강했기에 언제든 다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명나라와 조선은 끊임없이 여진족을 경계하였다. 여진족은 크게 세 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건주여진, 해서 여진, 야인여진이었다. 이간정책을 통해 이 세 부족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싸우도록 유도하였다.
명나라에 우호적인 부족은 해서 여진이었다. 이들에게는 특혜를 몰아주었다. 여진족은 물자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원조를 하였다. 그리고 전체 여진족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반면 호전적인 건주여진은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을 갖지 못하게 했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였다. 아예 싹이 자라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야인여진의 경우, 동쪽 끝에 있다 보니 문명의 혜택을 받기 힘들었다. 명나라는 야인여진은 그냥 내버려 두고 방치하여 계속 문명에 뒤떨어있게 하였다.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소속의 한 부족장 아들이었다. 당시 그의 부족은 명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명나라의 통제 속에서 그는 명나라 장군 이성량 휘하의 부대에 입대하였고, 많은 전투를 치르며 전투 경험을 쌓게 된다.
그가 24세 때, 가문에 큰 비극이 닥치게 된다. 여진족 내부에서 명나라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누르하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반란군을 설득하기 위해 반란이 일어났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이들이 나오지 않자, 명나라 장수 이성량은 총공격을 명령한다. 여진족에서는 그러다가 성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위험해진다고 이성량을 설득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두 사람도 숨진 채 발견되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반란 진압을 핑계로 건주 여진 지도자 두 사람을 없애버릴 수 있기에 무리한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가족을 잃은 누르하치는 분노에 휩싸였다. 지금 당장 명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까?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분노를 못 이겨 무리수를 두게 되면 복수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는 후일을 기약하며 화를 삭였다. 힘을 키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그는 추장이 되었다. 복수를 위해서는 먼저 여진족 전체를 통일해야만 했다. 그러나 주변에는 명나라의 첩자들이 득실거렸고, 명나라에 빌붙어 동족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과 다 싸워 이겨야만 했다. 그만큼 명나라의 이간책은 뿌리 깊게 파고든 상황이었다.
누르하치는 꾸준히 설득하며 친족들의 마음을 하나씩 움직여갔다. 그동안 여진족이 받은 수많은 피해들,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그럼에도 누르하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처단하였다. 이렇게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을 통합하고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누르하치가 여진족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해서 여진 세력을 합쳐야만 했다. 문명 수준이 낮고 각 부족 연맹에 머물러있는 야인여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해서 여진은 달랐다. 그들은 명나라의 특혜 속에 강한 경제력을 보유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군사력도 막강했다.
누르하치는 이때 명나라에 굽히고 들어간다. 가족을 죽인 장본인인 이성량에게 잘 보이기로 한 것이다. 그의 휘하로 들어가 수많은 전투에 건주여진 군대를 파견한다. 명나라는 점차 건주여진을 가까이하고 해서요 진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때 큰 변수가 발생한다. 명나라 장수 이성량이 해임된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이 지역에 있으면서 여진족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군벌처럼 이 지역 왕으로 행세했다. 명나라 조정에서도 쉽게 건들지 못할 만큼 그의 세력은 막강했다. 그가 나이가 들자 벼르고 있던 명나라 조정에서는 일순간에 그를 해임해 버렸다.
이성량은 비록 비리가 많고 그 지역에서 왕이나 다름없이 행동했지만, 유능한 장수였다. 여진족을 어떻게 해야 통제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정확히 알았다. 부족 간 이해관계나 힘의 세력 판도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성량이 사라지자 여진족들이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새로 부임한 명나라 관리들은 여진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당연히 효과적인 통제도 불가능했다.
이때 또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그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명나라와 조선은 7년 간 혈투를 치렀다. 당연히 여진족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누르하치를 이때를 기회로 생각했다. 명나라의 지원이 줄어든 해서 여진을 공격했고 마침내 여진족 전체를 정복하게 되었다. 기나긴 명나라의 이간정책에서 벗어나 민족 전체를 통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르하치는 명나라에 반대해 귀순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족이건 몽골족이건 출신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다. 마침내 1618년 그는 후금을 건국하면서 명나라 정복을 공식 선언한다.
그의 생애에 명나라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르후 전투에서 그는 명나라와 조선 연합군을 격파하며 요동 지역 전체를 정복하게 된다. 더 이상 명나라가 이기기 힘든 수준의 체급으로 키운 것이다. 과거 명나라 눈치만 보며 이간정책에 같은 여진족끼리 싸우던 그때의 여진족이 아니었다. 누르하치는 68세로 죽었지만, 그 이후 청나라는 더욱 세력을 키워 끝내 중국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르하치는 어떻게 집요한 이간정책을 이겨낸 것일까? 아래 비결을 들 수 있다.
- 자기감정을 죽이며 참고 때를 기다렸다.
-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을 활용했다.
- 밝은 미래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 선진 문물을 적극 도입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었을 때, 분노에 휩싸여 섣불리 반란에 합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가족을 죽였던 명나라 장군 이성량 휘하에 들어가 그의 참모가 되었다. 이렇게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 원한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사적인 원한 갚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이 분노의 힘을 모아서 여진족을 통합하는 데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찬스를 기다렸다. 임진왜란이라는 호재가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해서 여진을 토벌했다. 명나라가 개입하기 전에 빠르게 일을 처리한 것이다.
그는 적절하게 보상을 제시할 줄 알았다.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믿고 신뢰했다. 자연히 출세에 대한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모여들었다.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삼고초려하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였던 이성량의 손자 이영방이 귀순했을 때, 그를 중용하고 고위 장수로 임명하였다. 그것을 본 명나라 많은 장수들과 신하들은 대규모로 그에게 귀순하였다.
그러나 무조건 포용만 한 것은 아니었다. 끝까지 자기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친척들, 심지어 자기 친동생까지도 용서하지 않았다.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과감하게 내침으로서 반면교사를 삼은 것이다.
이렇게 누르하치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진족이 서로 싸우지 않고 힘을 합칠 경우, 어떤 밝은 미래가 펼쳐질지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이것을 통해 다른 부족에서도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간정책의 힘을 잃게 만들려면, 내가 제시하는 탈출방법이 이간정책보다 더 유익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만 한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계속 따르는 경향이 있기에,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나를 따르게 하려면 분명한 미래를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적극적으로 선진 문물을 도입했다. 여진족은 명나라에 비하면 문명에서 많이 뒤떨어져 있었다. 영원성 전투에서 패배한 다음에는 포르투갈에서 최신식 대포를 대량으로 도입했다. 그리고 명나라가 보유한 우수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몽골이 보유한 우수한 전투 기법을 도입하여 팔기군이라는 부대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의 통치 하에서 여진족은 강성해져 갔다.
여진족은 끊임없이 우리와 다투던 민족이다. 자연히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략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해 갔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면 여진족의 잔인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접어둔다면, 누르하치는 위대한 사람이다. 집요하기만 했던 명나라의 이간정책을 이겨내고 부족 통합에 성공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후금을 건국하여 끝내 그의 후손들이 중국 전체를 정복하는데 일조하였다.
그가 이간정책을 이겨낸 비결은 바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었다.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타이밍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칼을 가는 것이다. 이간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은 흥분하게 된다. 당장 따지고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증거가 충분히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리자. 좋은 때는 반드시 온다. 그때 칼을 빼들자.
그리고 늘 열린 사고를 하자. 나랑 생각이 다르더라도 기꺼이 포용하자. 그래서 내 사람을 많이 만들자. 그럴 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이간책을 쓰더라도 먹혀들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분명하게 미래를 제시하자. 나를 따랐을 때 어떤 점이 좋아지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이간질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나와 함께하게 된다.
누르하치의 성공은 어떻게 하면 악랄한 이간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직장에 이런 상사가 있다면 누르하치 사례를 잘 참고해 보자.
다음 글에서는 앞서 소개했던 인도와 누르하치 사례를 대조해 가며, 회사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