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이 미치는 영향 (브라질 독일 축구, 현리 전투1)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우리는 종종 멘붕에 빠지게 된다. 멘붕이란 멘털 붕괴의 약자로 말 그대로 당황스러운 상황에 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살면서 이런 멘붕은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가? 이런 멘붕 상황이 나를 강타하는 경우가 생긴다.



직장에서도 이런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게 개인 차원에서 뿐 아니라 팀 전체가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임원부터 팀장, 팀원들에 이르기까지 뭘 어찌할 줄 몰라서 당황하고 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빨리 이성을 찾고 사태 수습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이럴 때 영웅이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그보다 더 반가울 수는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망할 수밖에 없던 조선을 구한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이 항상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 멘붕이 한 조직을 얼마나 망가뜨리게 되는지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하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브라질 대 독일 축구 경기 사례이다.

다른 하나는 6.25 전쟁 때 있었던 현리 전투이다.



둘 다 위기 때 멘붕이 와서 조직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린 사례이다. 이 두 사례를 분석하고 회사에서 위기가 올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브라질 대 독일 축구 경기]


용호상박으로 예측되던 경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 전, 개최국 브라질의 상대는 독일이었다. 삼바 축구로 유명한 브라질은 역대 월드컵 최다 우승(5회)을 경험한 강팀 중의 강팀이다. 이에 맞서는 독일 역시도 3회 우승 경험이 있는 전통의 축구 강국이다.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일제히 이 경기에 쏠렸다. 홈경기 이점이 있는 브라질의 우위를 점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브라질 핵심 공격수 네이마르가 부상으로 결장했기에 독일의 우세를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문어까지 나서서 제각기 브라질 또는 독일의 승리를 예측할 정도였다.


6만 명의 브라질 관중들이 미네이랑 경기장에 가득 찼다. 이들은 브라질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홈팀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브라질 선수들 얼굴에는 미소가 흘러넘쳤다. 과연 이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미네이랑의 비극 (예상치 못한 양상)


경기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전반 10분 만에 독일이 첫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아직 남은 시간이 많으니 브라질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질 선수단 분위기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전반 23분에 독일이 두 번째 골을 넣자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먼저 관중석이 격앙되기 시작하였다. 6만 명의 브라질 관중들은 욕설과 고성,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 무거운 분위기는 그대로 선수단에게 전달되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자기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감독부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당장 독일은 저렇게 밀어붙이고 있는데 저걸 어떻게 막은 다음에 만회골을 넣어야 할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럴수록 선수들끼리 대화를 하면서 서로 응원하고 위치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모두가 어쩔 줄 몰라했다.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소나기 골의 시작


독일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브라질 선수들이 멘붕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들은 더욱더 맹렬하게 창을 세우고 앞으로 진격했다. 브라질 수비수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렇게 소나기가 갑자기 올 때는 먼저 옷이 비에 젖지 않게 비부터 피해야 한다. 전원 수비를 하며 추가 실점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멘붕이 온 브라질 선수들은 이도 저도 아닌 플레이만 했다. 정신만 차리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 공격만 막아내면 얼마든지 만회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휘체계가 무너진 브라질은 모래알 팀이 되고 말았다. 전반 20분 이후 불과 10분 만에 독일에게 4골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5대 0이 되고 말았다. 관중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기를 할 뿐이었다. 승리를 확신한 독일은 이후부터는 결승전을 위해 체력을 아끼면서 천천히 플레이했다. 그렇게 그날의 경기는 7대 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독일이 승리하게 되었다.


이날의 패배는 그날 경기장의 이름을 따서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현리 전투]


6.25 전쟁 때 경기도 가평에서 중공군과 국군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국군의 워낙 큰 패전이었기에 역사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 번에 국군 1만 명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큰 패배였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일까? 그 발단은 한 유언비어에서 시작되었다.




국군을 노리는 중공군


중공군은 북한을 돕기 위해 50만 병력을 동원해서 물밀듯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중공군은 과거 국공내전 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이르기까지 20년에 이르는 전투 경험을 갖고 있었다. 갑자기 징집되어 총을 들고 싸우게 된 국군이 상대하기는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미군은 더 강력했다. 압도적인 화력을 보유한 미군은 중공군이 아무리 머릿 수와 전투경험을 갖고 부딪쳐도 이를 격퇴하며 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전략을 바꾸기로 한다.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군 대신 무기가 허술하고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던 국군을 집중 공략하기로 한다.


쌈 싸 먹는 것처럼 국군을 사방에서 포위하여 섬멸하는 작전을 세우고 밀어붙였다. 이때 국군 3군단은 고립되어 있었다. 후방과 연결된 통로는 오직 오마치 고개라는 좁은 곳뿐이었다. 중공군은 이곳은 재빨리 점령해 버렸다. 3군단은 순식간에 포위되고 말았다.




멘붕에 빠진 병사들


병사들은 불안에 빠졌다. 포위된 것을 알게 되면서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이때 사령관이 비행기를 타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이 광경을 본 병사들은 사령관이 우리를 버리고 혼자 도망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병사들에게 쫙 퍼지면서 대혼란이 펼쳐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병사들 일부만 탈영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게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이제 모든 병사들과 장교들까지 다 도망치고 말았다. 군중 심리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때 적절하게 지시하고 통제하는 지휘관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오마치 고개를 지키던 중공군은 200명 수준이었다. 큰맘 먹고 돌파를 시도했다면 국군의 피해가 컸겠지만 3군단 병력이 2만 명은 되었기에 돌파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산속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총을 비롯한 무기를 버리고 가는 병사들도 많았다. 한 번 규율이 무너지자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총, 대포, 심지어 트럭까지 다 버려두고 도망쳤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매복 중인 중공군에 걸려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결국은 미군이 뒷수습을 담당해야만 했다. 전투기를 동원해서 아군이 버려두고 간 무기가 중공군에 넘어가지 않도록 폭격으로 다 부숴야만 했다. 그리고 대공세를 벌여 밑으로 내려온 중공군을 겨우겨우 다시 올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패배의 후유증


이 패배의 후유증은 굉장히 컸다. 2만 명이었던 3군단 병력을 수습했지만 돌아온 병사들은 절반인 1만 명에 불과했다. 남은 1만 명은 죽거나 포로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결국 도망치기 바빴던 3군단은 부대 전체가 해체되었다. 그리고 미군은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박탈해 버렸다. 한국군을 믿고 작전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모든 한국군의 작전은 사전에 미군 동의를 받아야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급속하게 퍼져나간다. 이걸 재빠르게 바로잡지 않으면 사기는 완전히 떨어지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위에서 아무리 지시를 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지휘체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처럼 멘붕에 빠지는 것은 무서운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현리전투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시작전권을 되찾는 문제가 자주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 발단이 된 사건이 바로 현리전투였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그 상황에서 혼자만 피해야 했는지, 그 이후에 수습할 만한 사람은 왜 아무도 없었는지 참 아쉬운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화사에서 멘붕에 빠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 두 개 사례를 기초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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