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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보상이 필요합니다 (성벽을 오르는 포를론 호프)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성 대리는 미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온 글로벌 인재이다. 영어를 잘하는 성 대리는 해외영업팀에서 근무하면서 해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에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하나 떨어졌다. 미국 법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 과정을 진행할 예정인데, 교육자료를 이번 주 금요일까지 다 번역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뭐 번역쯤이야 생각했지만.. 첨부파일을 열어본 순간 그는 경악하고 말았다.


엄청나게 긴 분량의 논문이었던 것이다. 애플이 어떻게 스마트폰에서 성과를 냈는지를 분석한 논문인데 페이지 수만 60쪽은 되었다. 문제는 교육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요약까지 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내 업무 하기도 바쁜데 이걸 언제 다 하라고.. 성 대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AI까지 다 동원해서 이틀을 꼬박 매달린 끝에 겨우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자기 본래 업무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 미국 법인 동료들을 돕게 되었다는 생각에 성 대리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팀장은 교육과정을 전무에게 보고하면서 자기 치적을 내세우기 바빴다. 번역 및 요약, 교육 과정 개발에 있어 성 대리의 공로가 컸음에도 성 대리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칭찬받자고 한 일은 아니지만 성 대리는 서운함을 느꼈다. 이거 한다고 이틀 동안이나 밤 11시 돼서 퇴근했는데, 그럼 나는 왜 이 고생을 한 거지? 그 생각이 든 것이다.



성벽을 가장 먼저 오르는 병사 (포를론 호프)


'포를론 호프'라는 용어를 아는가?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용어이다. 네덜란드어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적군의 성벽을 오르는 병사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고대시대나 중세시대 전투영화를 보게 되면 공격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다리를 가지고 제일 먼저 성벽을 타고 올라가는 병사들이 있다. 당연히 상대편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적군의 접근을 막게 된다. 끓는 물, 기름, 불덩어리가 성벽을 오르는 병사들에게 마구 뿌려진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고 사다리를 끊기 위해 낫을 휘두른다. 그걸 뚫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생존활동이 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저런 아비규환 속에서 불사신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열 명이 달려들면 살아남는 사람은 한 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극악의 생존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죄수들이나 적군 포로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자진해서 이 업무를 맡은 병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뭐가 좋아서 이런 업무를 하는 것일까?


포를란 호프를 수행하는 병사들에게는 엄청난 대가가 주어졌다. 신분 상승 및 큰 금액의 연금이 지급되었다. 만일 병사가 사망할 경우 그 혜택은 가족들에게 주어졌다. 평생을 천민으로 지내야 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병사들에게는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었던 셈이다.


당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로마제국조차도 장거리 원정을 떠났던 병사가 몸이 성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결국에는 죽는 경우가 많았고,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정 몇 번 다녀오게 되면 생존확률은 극히 낮아졌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거라면 보상이라도 두둑하게 챙기고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선봉대에 전쟁 포로나 죄수를 쓰기는 어렵다. 죽기 살기로 공격할 수 있는 정신 무장이 잘 된 사람을 써야 하는데 억지로 끌려온 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겠는가? 그러니 포를론 호프가 필요한 것이다.


병사가 죽은 다음에 보상을 안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훗날 다른 전투 때 포를론 호프를 하겠다는 병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상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그렇게 포를론 호프 제도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적절하게 보상을 주는 방법


과거에는 내재적 보상, 외재적 보상으로 이원화하여 내재적 보상이 외재적 보상보다 더 우수하므로, 내재적 보상을 줘야 한다는 이론이 대다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내재적 보상은 일에 대한 성취감, 타인의 인정,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의미했다. 반면에 외재적 보상은 돈을 주거나, 승진을 지켜주는 것 등 물질적인 보상이었다. 그런 것들은 약발이 금방 떨어지기에 효과가 낮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들은 내재적 보상, 외재적 보상으로 딱 잘라서 효과를 말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돈의 경우, 지속적인 동기 부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보상을 주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보았다.



1. 금전적인 보상 제공


급여를 인상하는 것 외에 보너스를 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보상은 그 직원의 취향을 고려한 보상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직원이라면 도서 10만 원 구입 쿠폰이 있을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비즈니스 항공권 제공이 될 수도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직원이라면 고급 호텔 식사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내 취향을 고려한 금전적인 보상은 회사가 나를 배려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2. 칭찬과 격려 제공


팀 단체방에 그 직원이 한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그 직원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회의 시간에 케이크와 꽃다발을 주면서 성과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군대처럼 장기간 포상 휴가를 주거나, 재택근무를 인정하는 것도 상당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계발을 위해 고액의 장기간의 교육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마무리하며


포를론 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그냥 자기 목숨을 버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일은 지원자들이 제법 있었다. 보상이 꽤 컸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쟁터 나가면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면 죽는 대가로 내 가족들 신분도 높이고 금전적인 보상도 줄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진짜 운이 좋아서 자기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인생 역전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사람은 보상을 기대하고 움직이게 된다. 금전적 보상이라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구분 자체가 선입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받는 사람의 취향이나 니즈를 반영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 보상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보상은 주는 것보다는 잘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같은 돈을 주면서도 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택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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