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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과 포용이 갖는 힘 (1편 : 악바르와 아우랑제브)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한 팀장이 회계팀 팀장이 된 지도 어느새 3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많은 팀원들이 새로 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였다. 역시나 조직은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한다는 말이 맞는 것만 같다.


그러던 중 노기영 씨가 한 팀장 팀에 합류하였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노기영 씨는 튀는 직원이었다. 늘 큼지막한 헤드폰을 끼고 출근해서는 역시 큼지막한 텀블러를 들고 모닝커피를 한가득 담아 온다. 여름철에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기도 한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회사에서도 반바지 착용 괜찮다고 얼마 전에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회식 자리 때마다 "저는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고 속이 메스꺼워서 술 안 마실래요" 외치는 것이다. 회계팀 특성상 술자리가 많다. 기획팀과 술자리가 많고, 회계 감사 때마다 회계사들과의 술자리도 많은 것이다. 그런데 잔에다 콜라나 사이다를 채우고 저렇게 뻘쭘하게 앉아 있으니..


한 팀장은 문득 20년 전 자기가 신입사원이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한 팀장은 회식 자리에서 탬버린을 치며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좋아서 그 짓 한 줄 아나? 싫어도 회사에서는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데' 요즘 MZ세대들은 다 자기주장이 강한 건가? 싶기도 하고, 괜히 "라테는~" 이걸 외치는 꼰대처럼 보일까 봐 한 팀장은 오늘도 그냥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영원한 숙제, 세대 간의 갈등


최근 MZ세대가 부각되면서 과거 X세대나 Y세대가 떠오를 때와는 또 다른 이슈들이 나타나고 있다. 자기주장 강하고 조직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세대라는 것이다. 물론 그 나이대 사람들을 하나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양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대 4,500년 전, 이집트 피라미드에 쓰인 낙서에서도 그런 세대 갈등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 이런 문구가 많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학문을 등한시하고 시조나 쓰며 풍류를 즐기는데 빠져있다"는 문구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대 간 갈등은 항상 있어왔던 것이다.




갈등에 대한 상반된 사례 (악바르와 아우랑제브)


그런데 우리 삶에는 비단 세대 간의 갈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별, 정치, 종교, 빈부 간의 갈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 갈등들은 결국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치부하는데서 시작한다.


역사적으로도 다름에 대해 서로 다르게 대처했던 두 왕이 존재한다. 한 명은 나라를 당대 최강국으로 이끌었지만, 다른 한 명은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말았다. 이 둘의 사례를 통해 관용과 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악바르 대제의 관용


악바르 대제는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세종대왕급 포지션의 왕인 것이다. 그는 무굴제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중흥 군주였다.


그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무굴제국의 3대 황제가 되었다.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주변에는 수많은 적들이 있었다. 지방 제후들은 자체 영토와 함께 수천~수만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굴제국에서 떨어져 나가 자기만의 독립국을 만들고 싶어 했고, 중앙정부의 왕족들과 신하들 역시도 나이 어린 황제를 몰아내고 자기가 실권을 잡고 싶어 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 역시 이슬람 제국인 무굴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반란을 진압해야만 했다. 전투로 하루 해가 뜨고 하루 해가 질 정도였다. 이쯤 되면 아무도 믿지 않고 힘으로 억누르고자 하는 폭군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나에게 반기를 들었던 세력에 대해 그리고 어찌 미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보복으로 응수하게 되면 이 악순환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이제 전쟁은 마무리 단계이고 제국은 안정화가 필요했다.


그는 관용과 포용을 선택했다. 다행히 그는 무슬림이었음에도 어릴 때부터 힌두교도 스승들 아래에서 학문을 공부했다. 그 영향으로 그는 종교와 관계없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항상 배움을 청하였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타 종교에 관용을 베풀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슬람 수니파였던 그는 시아파 군주들의 무덤이 수니파 마을과 가깝다는 이유로 그 군주의 무덤을 파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는 조금씩 변해갔다. 인도처럼 수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국가에서 억압과 통제를 가하게 되면 반드시 반발이 일어나게 되고 국가가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교적인 원칙만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개종을 인정하였다. 지금도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법 체계로 인정하는 국가에서는 이슬람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그는 17세기에 이미 개종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힌두교의 축제들을 본인이 직접 주최하였고 이교도들에게 부과하던 세금도 폐지하였다. 힌두교도들은 그를 성인으로 불렀다고 한다. 자이나교나 시크교처럼 소수 종교에도 혜택을 부여하여 그들이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하며, 경제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그 덕에 50년 가까운 그의 치세 때 무굴제국은 영토만 확장된 것이 아니라, 별다른 분쟁이나 반란 없이 국가가 안정을 이루게 되었다. 진정한 강대국을 이룬 것이다. 그만큼 관용과 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악바르 대제


2. 아우랑제브 왕의 종교 탄압


그러나 악바르 대제가 죽고 그의 손자 아우랑제브가 차차기 무굴제국의 황제가 되자 상황은 급변하고 말았다. 아우랑제브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다. 그는 대놓고 무굴 제국 내 모든 백성들을 무슬림으로 만드는 것이 내 최대 목표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니 그에게 종교적인 어떤 관용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비무슬림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종교세를 부과하였다. 힌두교 학교들 및 사원들은 불태워버렸다. 음악 연주 역시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 하여 금지시켜 버렸다.


형법도 비무슬림들에게는 가혹하게 집행되었다. 판사들은 대놓고 비무슬림들에게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버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참수형으로 다스렸다. 무굴제국은 이슬람 신정 국가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다.


무굴제국의 다수는 힌두교도였다. 당연히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시크교도들 역시 마친가 지였다. 성직자 반란, 농민 반란, 지방 토후들의 반란.. 아우랑제브는 재위 기간 내내 반란 진압하느라 정신없는 삶을 보내야만 했다.


국론은 분열되고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나고 무굴제국은 급속히 무너지게 되었다. 당시 슬슬 인도 땅을 차지하고 싶어 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특히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세우고 인도 지방 토후들을 매수하며 서서히 인도 땅으로 세력을 뻗히기 시작했다. 반란 토벌하느라 아우랑제브는 영국과 프랑스에는 큰 관심을 쏟지도 못했다. 그렇게 무굴 제국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이슬람만을 강조하고 다른 종교는 극단적으로 탄압했던 정책이 강성했던 국가를 짧은 시간 만에 무너지게 만든 것이었다.

아우랑제브 왕


다음 2편에서는 직장 내에서 나랑 잘 맞지 않는 직원이 있는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도 무굴 제국의 두 왕인 악바르와 아우랑제브를 통해 통합과 관용이 회사 안에서 어떻게 발휘되면 좋은지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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