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배우는 직장생황 이야기
장 팀장은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웃음소리도 우렁차고 사무실에서는 늘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참 직설적이다. 화가 날 때는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고는 술자리에서는 그 직원에게 소주를 잔에 연거푸 따라주며 "이거 다 네가 잘 되라고 그러는 거 알지? 애정 없으면 내가 이런 짓도 안 해!" 이 말을 반복한다. 그러고는 머리를 툭툭 치며 뺨을 어루만진다.
어떨 때는 발로 엉덩이를 찰 때도 있다. 본인은 뒤끝이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나는 화를 내도 그 자리에서 다 잊어버리는 스타일이라고 늘 주장한다. 그렇게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 온 장 팀장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팀원 중 누군가가 장 팀장을 폭행 및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예쁘다고 격려한 것인데 이게 괴롭힘이라고? 요즘 젊은 직원들은 개념이 없다니까? 이런 거 하나 못 견디고 말이야.. 그저 이 사태를 억울하다고만 생각하는 장 팀장이다.
이 사례를 들으면서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는가?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인물이 확 떠올랐을 것이다. 바로 울산 감독을 했던 신태용 감독이다. 사실 이 사례는 신태용 감독 이야기를 직장 버전으로 각색한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선수 시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중 하나였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개인기로 그는 수많은 골을 만들어내었다. 선수 은퇴 후 그는 2018년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거쳐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화려한 지도자 이력을 거쳤다. 2025년에는 울산 HD 감독으로 다시 국내 무대에 컴백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 부임 불과 두 달 만에 그는 감독직에서 전격 경질되었다. 경질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선수들과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일부 선수들은 태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구단에 신태용 감독과는 같이 갈 수 없다고 경질을 요구했던 주전급 선수도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사건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게 되었다. 그중 큰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신태용 감독이 수시로 선수들의 머리나 뺨을 때렸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경기에 패배한 날, 선수들을 줄 세워놓고 그날 부진했던 선수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이에 대해 반박했다. 때린 것이 아니라 격려 차원에서 뺨을 쓰다듬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 선수들의 말은 달랐다. 상당한 강도로 때렸고 당시 "짝"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신 감독이 선수들 귀에 호루라기를 세게 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집중력이 약해 경각심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살짝 불었던 것뿐이라고 해명하였다. 이처럼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실 신태용 감독의 이런 모습은 울산에서만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감독 시절에도 선수들의 머리를 툭툭 치고, 발로 엉덩이를 차는 모습이 매스컴에 종종 나오고는 했다. 다만 그때는 신태용 감독이 인도네시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기에 별 이슈가 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울산에서는 달랐다. 울산의 주전 선수들은 신 감독의 이런 모습을 폭력으로 받아들였다. 자존심 상한다는 반응이 많았고 신태용 감독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 스포츠계에는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 그것은 바로 체벌 문화이다. "때려야 말을 잘 듣는다"는 신화가 스포츠계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운동부 선수들은 폭언,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시 오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뺨을 맞고 발길질을 당하며 쌍욕을 먹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이는 비단 학교 운동부만의 일은 아니다. 프로 스포츠에서도 여전히 고질병처럼 체벌 문화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를 이루었던 박종환 감독이었다.
박종환 감독은 6가지 전술을 경기 전에 준비하고 상황에 따라 전술을 변화시키는 전술가 스타일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빠따로 통하는 폭력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었다.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플레이를 하는 경우에는 경기가 끝나고 사정없이 매를 휘둘렀고, 선수들의 뺨을 때리는 것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다.
물론 박종환 감독이 활동했던 1980년대는 학교나 군대에서도 구타가 일상화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의 강압적인 방식은 크게 문제 되지 않고 넘어가게 되었다. 훈계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폭력이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종목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야구 김응룡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모 포수의 투수 리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더그아웃 바닥에 원산폭격을 시키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하였다. 배구의 김호철 감독도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 모 선수의 언행이 귀에 거슬린다고 뺨에 피멍이 들 정도로 때려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구시대적인 운동부 체벌 문화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폭력에 대해 더 이상 참지 않는 시대 분위기도 있고, 고충에 대해 신고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 폭력에 연루되었던 많은 지도자들이나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서 퇴출되기도 하였다. 조금씩 자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력은 과연 스포츠계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그건 결코 아니다. 직장에도 이런 부분이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다. 꼭 때리는 것이 아니라도 폭언, 망신주기 등등 직장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갑질, 인신공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중소기업에서 스리랑카 근로자가 지게차에 랩으로 돌돌 말린 채 감금되어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몇몇 직원들이 이런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었다.
아는 분의 회사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알루미늄괴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화가 난 작업반장이 뜨겁게 달궈진 알루미늄괴를 집게로 집어 그 사원의 팔에 올려버렸다고 한다. 뜨겁게 달궈진 다리미를 올려놨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큰 화상을 입은 그 직원은 병원에 입원하고 그 작업반장은 형사처벌 및 징계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이처럼 회사에서도 폭력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내 첫 직장이었던 거제도의 중공업은 회식문화가 굉장히 힘들었다. 신입사원 시절 건배를 할 때 내 잔이 선배직원보다 높게 올라가자 그 선배직원은 갑자기 내 잔을 뺐어서 벽에다 집어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한마디 했다.
"술을 어디로 배웠기에 그 따위로 건배를 하고 있어"
취기가 올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만일 지금 그런 일을 당했다면 곧바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겠지만 당시에는 신입사원이다 보니 그냥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의 폭력이 남기는 후유증
'무례함의 비용'이라는 책의 저자 크리스틴 포레스는 직장에서 겪는 폭언, 폭행은 죽을 때까지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증상을 'Brain burn'이라고 명명했다. 뇌에 화상을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끊임없이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와도 유사하다. 가해자만 보면 분노와 함께 두려움이 같이 밀려오게 된다. 또다시 그런 불쾌한 환경에 쳐하지 않기 위해 늘 눈치를 보고 혼나지 않을 행동 위주로 하게 된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외국인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선수들은 예의 바르고 똑똑한데,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슛 찬스가 오면 과감하게 때릴 줄도 알고, 혼자서 단독 드리블로 뚫고 들어갈 줄도 알아야 되는데 그런 상황만 오면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거 하다가 실패하면 혼나지 않을까? 이 생각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고 다른 선수에게 공을 주고 마는 것이다.
이는 학교에서 축구를 배우는 동안 수많은 감독과 코치들의 폭언에 시달리면서 위축된 결과이다. 성인이 되고 국가대표팀 선수가 되었음에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직장에서의 폭력은 나를 위축시키고 눈치를 보게 만들며,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폭언, 폭행을 일삼는 리더나 선배가 있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여기서의 폭언, 폭행은 물리적으로 때리거나 심한 욕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과도하게 쓰다듬고 툭툭 치며, 고함을 지르는 등의 행동을 모두 포함한다.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모든 행동들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은 '이 정도는 얘한테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고 그 강도를 높이게 된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다.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자. 나는 그때 기분이 나빴고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할 것을 요구하자. 이건 주저할 일이 아니다. 내 당연한 권리이다. '아이 메시지(I-Message)'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장님께서 저 보고 할 줄 아는 게 숨 쉬는 것 말고는 없다고 하셨지요. 그 말씀 듣고 솔직히 정말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부분 사과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 메시지에 따라 내 기분에 기초하여 불쾌했던 점을 설명하고 사과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내 기분도 풀리고 상대방도 나를 함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리더라도 폭언, 폭행을 일삼는 사람과는 절대 가까이 지내지 말자. 그런 리더는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일만 잘하면 품행이 엉망이어도 눈 감아주고 넘어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연예계에서 유명했던 영화감독, 개그맨, 공직사회에서 탄탄대로를 거쳐 온 모 법무부 차관도 폭력 때문에 망신을 당하고 낙마했던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순간의 실수라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라고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성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내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반성할 게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자.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다. 검은 먹물을 가까이하면 나도 어느새 까맣게 된다는 말이다. 비록 당장의 승진에 지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소신을 지키자. 승진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밥 먹여준다고 해도 이런 사람은 금방 낙마하기에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다.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유난을 떤다, 유별나다, 내가 신입사원 때는 다 이랬다 이런 식으로 적반하장 식으로 나온다면 이 때는 말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직장 내 고충 처리부서에 제보하자. 이번 울산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을 제보했던 것처럼 여러 선수들이 같이 의견을 모아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녹취나 영상처럼 증거자료를 확보한다면 더 효과적이다. 말로 안 되는 사람 상대로는 법이나 제도의 힘을 빌려 해결해야 한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팀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감독, 직장에서 수시로 폭언을 날리는 리더들의 대다수는 과거 자기가 선수였을 때, 신입사원이었을 때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에 젖어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폭력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순간 상대방이 고분고분해지면서 내 말을 잘 듣는 모습에서 지배욕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비뚤어진 권력감에 취하는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스포츠이건 직장이건 그 어디에서도 폭력은 안된다. 격려한다고 툭툭 치는 것, 욕설을 날리면서 애정이 있으니 이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분명하게 싫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정중하게 사과를 요청하자. 그렇게 했음에도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그건 둘 사이에서 해결될 수 없다. 생각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같이 고충 신고를 해서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
폭력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사회를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