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방법 알기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이제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국민 단어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사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이 사회에 너무나 정확하게 잘 들어맞는 진리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된 것은 다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 탓을 하기 일쑤이다.
누군가가 쉽게 돈을 번 것 같으면 졸부라고 비난한다. 수능 때 평소보다 점수가 뛴 학생이 있으면 수능 대박이 터진 것이라고 말한다. 직장에서 빨리 승진한 사람이 있으면 줄을 잘 서서 그런 것이라고 폄하한다.
반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GTX 노선 역이 생기는 바람에 아파트 가격이 한 달 만에 몇 억이 뛰게 되면, 미래를 내다본 내 혜안 덕이라고 자기를 치켜세운다. 자녀가 일류대에 합격하게 되면 똑똑한 엄마, 아빠의 머리를 물려받았고 부모의 세심한 케어 덕에 아이가 성공한 것이라고 으쓱해한다. 직장에서의 승진은 내 피, 땀, 눈물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누가 나를 칭찬하면 예의상 겉으로는 "다 운이 좋아서이지요" 말하지만, 그 속마음은 다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다 비슷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심리학 실험이 있어 한 번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그 실험의 이름은 '모노폴리 (Monopoly) 실험'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폴 피프 교수는 보드게임인 모노폴리(Monopoly)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심리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모노폴리 게임은 주사위를 굴려 말이 도착한 곳의 땅을 사고 그 위에 건물을 짓는 게임이다. 부루마블과 유사한 게임이다. 땅과 건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연히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때 폴 피프 교수는 한 명에게만 다른 사람보다 두 배의 돈, 더 많은 초기 자산, 주사위 굴릴 때 추가 혜택 등 다양한 유리한 조건을 부여했다. 원래 주사위는 한 개만 쓸 수 있는데 이 참가자는 두 개를 쓰게 했고, 초기 자금인 시드 머니도 다른 참가자의 두 배가 제공되었다. 이기라고 대놓고 밀어준 것이다. 당연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충분한 자금력으로 많은 땅과 건물을 사들인 참가자가 십중팔구 게임의 승자가 되고 말았다.
게임이 끝난 후 이 참가자에게 승리의 비결을 물었다. 과연 뭐라고 대답했을까?
두 개의 주사위와 충분한 초기 자금 덕에 승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자기가 전략을 잘 세운 덕에 승리했다고 승리의 공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왜 패배했는지 물어보자 그들은 전략이 부족했고 소극적으로 게임에 임하는 바람에 진 것이라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지적했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가 성공하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자존감과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원인을 상황적 요인으로 돌리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어." 이렇게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그 행동의 원인을 상황에서 찾게 된다. 일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AI 기반으로 챗봇을 만들려고 할 때,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주지도 않을뿐더러, 팀장은 그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다른 일만 주야장천 시킨다. 그 바람에 마감 기한 내에 제대로 된 AI 챗봇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주변 상황을 탓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타인의 행동을 볼 때는 성격이나 능력 같은 그 사람의 내적인 특성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잘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선 상황에서 동료가 다른 바쁜 업무 때문에 AI 챗봇을 개발하지 못했다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이 느리고 집중력이 떨어져기 때문에, 제 때 일을 처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내가 속한 조직이나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자신의 집단이 행한 잘못은 '어쩔 수 없거나', '별것 아닌 일'로 축소하게 되고, 상대가 행한 잘못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이 뇌물을 받게 되면 떡장수가 떡 주무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손에 콩고물이 묻는 것이고, 싫어하는 정당 정치인이 받은 뇌물은 인간쓰레기가 벌인 추악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내 외모는 어느 정도일까 묻는 설문에서 무려 66퍼센트의 사람들이 '나는 평균 이상의 외모를 지녔다'라고 응답했다. 평균 이하라고 응답한 사람은 겨우 7퍼센트였다.
자기에게만 한없이 관대한 이런 모습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타인의 행동을 비판하기 전에, '만약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해 보자.
예전에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는 사람에게 신호 좀 제대로 지키라고 큰 소리로 훈계했던 일이 있었다. 기본적인 교통신호조차 못 지키는 사람이 자기 인생은 제대로 살겠느냐며 속으로 실컷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알람 소리를 못 듣고 늦게 일어났던 날이 있었다. 정신없이 옷만 걸치고 지하철역으로 뛰어갔다. 지하철이 6분 간격으로 오는데 이 지하철 못 타면 영락없이 지각이었다. 융통성이라는 1도 없는 꽉 막힌 팀장이 지각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그날 나도 횡단보도를 그대로 무단횡단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무단횡단하는 내 모습을 봤다면 개판인 인간이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무작정 욕부터 하기 전에 나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타인의 잘못은 그 사람이 무능하고 못돼서 그런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는 경향을 경계하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나에게도 부족함이나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잘못을 사과하자. 이때 사과는 영혼 없는 유체이탈식의 사과가 아니라, 1) 내가 잘못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2) 이로 인해 어떤 피해를 끼쳤으며, 3) 앞으로는 어떻게 주의하겠다는 말을 하도록 하자.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얻고 성숙해지는 과정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과 원칙을 적용하고, 예외를 최소화하자.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지각을 하면 자기 관리가 엉망이라 근태가 나쁘다고 단정 지어 버린다. 반면 나와 친한 동료가 그런 것이라면 지하철이 고장 나서 그런 것이겠지. 살다 보면 지각 한 두 번은 누구나 다 하는 걸 이렇게 쿨하게 넘어가게 된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일이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많고,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진취적인 분들이시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런다고 나도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된다. 나만큼은 다르게 행동해 보자.
내로남불 경향은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이므로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꾸준한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공감 노력을 통해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보자.
예전 글에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라이베리아는 19세기 때 미국에서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 땅에 돌아간 뒤 세운 국가이다. 그곳의 흑인 노예 이주민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차별과 설움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지역의 지배층이 되자 웃기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왔던 원주민들을 멸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현대 문명도 모르고 미개하게 살아가는 인간으로 무시받았다. 심지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과거에 자기들이 당했던 만큼 되돌려주는 흑인 노예 이주민들도 많았다.
원주민들이 그걸 그냥 받아들일 리 없었다. 두 집단 사이에는 깊은 갈등이 생겨났고 200년이 지난 지금도 두 집단은 내전을 치르며 반목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내로남불 심리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노예를 쓰는 것은 낯선 아프리카 땅에서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백인들이 자신들을 노예로 부린 것은 인본주의 정신에 반하는 악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지극히 엄격하다.
이제부터라도 이걸 한 번 바꿔보자.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깨어 있다고 생각하거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이걸 실천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 더 성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