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이리나 사발렌카(Aryna Siarhiejeuna)'는 벨라루스의 여성 테니스 선수로 현재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 선수이다. 그녀는 강력한 서브와 파워풀하면서도 구석을 찌르는 스트로크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제하지 못하고 경기 중 자기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그녀의 큰 단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25년 10월에 열린 중국 우한 오픈에서 사발렌카의 단점이 여과 없이 나타났다. 준결승전 3세트에서 상대 선수에게 세트를 빼앗기게 되자 라켓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 라켓은 공을 줍는 아이(볼키드)에게 그대로 날아갔고 볼키드 바로 옆을 그대로 강타했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상황이었다.
논란이 일자 경기 후 그녀는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 해명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큰 실수를 했다. 상대 선수와 볼키드에게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 이 말만 하면 되는데, 자존심 때문인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빙빙 돌려서 말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힘든 일이 많다 (아버지는 이미 6년 전에 돌아가셨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음 세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우리 모두 실수를 저지른다. 나 또한 가끔 자제력을 잃는 사람이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사발렌카의 이런 유체이탈식 화법에 많은 테니스 팬들은 분노하였다. 내가 뭘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조심하겠는지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고 이미 6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마치 철학자가 설교하듯이 현학적인 말만 했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소크라테스가 2,500년 뒤 지금 세상에 돌아와서 한마디 꺼낸 줄 알았을 것이다.
사발렌카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과는 제대로 해야 한다. 잘못된 사과는 오히려 큰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실 사과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결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과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마음으로는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사과의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사람들이 사과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과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행위로, 이는 스스로를 약하고 불완전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자존심이 강하거나 자신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사과를 굴복이나 수치로 여겨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것을 꺼려한다. 이 사람에게 내 등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과는 단순히 실수를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칫 모든 책임을 다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도로를 주행하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 함부로 "I'm sorry"를 말하지 말라는 조언을 종종 듣게 된다.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이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시도 사과를 하면 법적, 사회적, 또는 관계적 책임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사과를 회피하게 된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타인이 겪는 불편한 감정이나 상처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들의 감정을 '과민 반응'이나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나는 저런 일에 상처 안 받는데'라고 생각하며 약해 빠진 인간, 예민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타인이 자신과 다르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실수를 실패로 간주하며, 사과는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과를 한 듯 안 한 듯 빙빙 말을 돌려가며 직접적인 사과를 회피한다. 앞서 언급했던 사발렌카 선수처럼 마치 남이 실수한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나처럼 완벽한 사람이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내가 실패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행동이기에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겠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세상에 그 정도 실수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생각으로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비치게 되어 신뢰를 잃게 만든다. 상대방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분노가 남게 되어 관계가 악화되고, 결국은 관계가 단절되거나 고립될 수 있다. 이때 남 탓만 하거나 환경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은 무책임하고 오만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쉬워, 평판이 나빠지게 된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고 왜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련의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성찰을 거부하면 결국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아무것도 깨닫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과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다음 예시를 보자.
둘 중 어떤 사과 방식이 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하는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정답은 2번이다.
"나는 사과했다 그러니 이제 됐지?" 이런 사과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고 그냥 미안하다 땡! 이런 사과도 최애의 사과이다. 뭘 잘못했고 앞으로 뭘 조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사과방법은 무엇일까?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자. "기분 나쁘게 한 거 미안해" 보다는 "내가 당신 허락 없이 축구공을 가져가서 미안해"처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이때 변명을 하지 않도록 한다.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나도 난생처음 해봤던 일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어" 이런 말은 변명처럼 들리게 된다.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 "그게 나도 너한테 주려고 자료를 찾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상무님이 나를 찾는 바람에 깜박했지 뭐야. 어쨌든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기는 하지"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지면 곤란하다. 그냥 핵심만 정확하게 말하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그 일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와 같이 말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깊이 경청해야 한다.
상대방이 예민하다고 비난하거나 책임을 돌리는 듯한 말은 절대 금물입니다. 심지어 교통사고를 내고도 빈소에 한 번도 가보지 않거나, 이 참에 보상금 거하게 챙기려는 건 아니냐 이런 소리를 하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상대방을 분노하게 만드는 뻔뻔스러운 자세이다.
내가 잘못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자. "제가 이번 분기 미수금 회수를 못했네요" 이렇게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수금 관리에 대해 한참 전에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는데, 인수인계 자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걸 매 분기마다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잘못하게 된 이유를 말하도록 하자.
왜 잘못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것은 내가 실수를 복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거나, 내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요인들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걸 짚고 넘어가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수능 준비할 때 오답 노트를 만들듯이 내 실수를 기록하고 복기해야 반복하지 않게 된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자. 단순히 "더 잘할게"보다는 "다음부터는 당신 허락 없이 물건을 만지지 않을게", "마감일을 놓치지 않도록 미리 핸드폰 알림을 설정해 둘게"와 같이 실천 가능한 변화를 언급하는 것이 좋다.
재발 방지 약속을 통해 상대방은 이 사람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진심을 알게 된다.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듯이, 사과도 적절한 타이밍에 해야 한다. 잘못을 하자마자 곧바로 하게 되면 진심이 아니라 그냥 기계적으로 내뱉는 사과라고 느끼기 쉽다. 반대로 시간을 지체한 뒤에 너무 늦게 하게 되면 상대방은 점점 더 분노 게이지가 높아지게 된다. 그때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보통은 잘못을 깨달을 후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사과하는 것이 좋으나, 서로 감정이 격앙된 상태라면 잠시 시간을 두고 화가 가라앉은 후 사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과도 상대방 기분이 가라앉은 뒤에 해야 효과가 있음을 명심하자.
뉴스를 보다 보면 음주 뺑소니 사고로 행인을 사망하게 한 이후에도 빈소에 조문도 안 가고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안 하는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가 분노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본인 때문에 일이 틀어져서 팀원들이 그 일에 다 매달려서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도 제대로 된 사과도 안 하는 철면피 직장인도 종종 볼 수 있다.
사과가 그렇게 어려울까?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걸 내 자존심과 결부 짓는 순간 사과는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사과도 기술이다. 잘하는 방법이 있고, 하면 할수록 기술이 늘게 된다. 대충 의무감으로 사과하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자. 그게 상대방 기분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내 신용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래 방법대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자. 먹는 사과가 달콤하듯이, 제대로 된 사과는 나와 상대방의 사이를 달콤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