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마음이 힘들 때 2
앞선 글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경험을 소개드렸다. 이번에는 정신의학과 치료 후기를 쓰고자 한다.
만일 내가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면 심리치료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약물치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 심리치료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약물치료를 권하면 일단 불안해한다. 내가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건지, 언제까지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은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더 또렷하게 잘 보기 위해 안경을 쓰듯이 긴장을 완화하고 더 집중하기 위해 약을 먹는 것이다. 더욱이 나처럼 ADHD 성향이 강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심리치료 때 받은 CAT검사 소견서를 들고 집 근처 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시간을 예약하고 갔는데도 내 앞의 대기자가 6명이 넘었다. 원래 정신의학과는 환자 당 소요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대기가 항상 발생한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의학과를 가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그러니 걱정말고 가자.
솔직히 나는 심리상담센터에서 ADHD로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드디어 내가 왜 직장에서 일을 못했던건지 실마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쉽게 ADHD를 판단하지 않으셨다. CAT 검사는 하나의 증거일 뿐 이거 하나만 갖고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추가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해달라고 하였다.
사실 요즘 조금만 주의력이 산만해도 "나 ADHD같아요!" 외치면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금쪽같은 내새끼 이런 육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ADHD 검사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사실 전체 인구의 5~10퍼센트는 ADHD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ADHD는 흔한 증상이다.
결국 집 근처 교육청에 가서 생활기록부를 신청했다. 원하는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찾으면 된다고 한다. 사실 학창시절에 나는 우등생이었다. 생활기록부에 나쁜 말이 써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예상대로였다. 의사 선생님은 미사여구로 가득찬 내 생활기록부를 보시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이거 ADHD인지 아닌지 애매한데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지각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사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서 20분간 새벽기도하고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40분간 러닝을 한다. ADHD의 전형적인 증상인 아침에 못 일어나기가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는 늘 공상에 젖어 있고, 한 곳에 가만히 잘 앉아있지를 못한다. 집에서도 끊임없이 동네를 돌아다니고, 심지어 회사에서조차 건물 계단을 끊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CAT 검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오경보에 취약하다. 충동적으로 무엇을 결정하거나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더 검토하고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내도 되는데 급하게 보내다 보니 날짜를 틀리거나 수신자를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비일비재하게 한다.
이런 내 설명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ADHD 약을 처방하여 주셨다. 일단 가장 소량으로 복용하고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약효가 있는지를 말해달라고 하였다.
ADHD 치료는 약 처방이 필수적이다. 뇌 안에서 주의집중 능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뇌의 전두엽에서도 앞쪽에 있는 전전두엽은 주의 집중력과 행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다 보니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충동이나 행동조절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ADHD 치료제는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이다. 콘서타, 메타데이트, 메디키넷, 페니드 등이 있으며 그 중 콘서타가 제일 많이 쓰인다. ADHD 환자들은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부분을 개선하는 약이다.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치료제는 아토목세틴(Atomoxetine)이다. 집중력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이 약물은 메틸페니데이트보다는 증상 개선 효과가 약하고 효과 발현도 느리다.
메틸페니데이트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경우에 사용된다.
나는 아토목세틴 20mg을 처방받았다. 가장 소량의 단계로서 효과는 다소 약하지만 부작용이 적은 아토목세틴을 받은 것이다.
복용을 해도 큰 변화는 없었다. 너무 양이 적어서일까? 약 복용 후기를 보니 머리 속에 늘 뿌옅게 있던 안개가 싹 걷히는 느낌이라는데 그런 느낌이 오지는 않았다.
다음번 처방에서는 40mg으로 늘렸다. 그때부터 비로소 약효를 느낄 수 있었다. 뿅하는 느낌까지는 없었지만 뭔가 차분해지는 느낌이 왔다.
단파 라디오에서 나오는 치치직 고주파 소리가 늘 머릿속에 있었는데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평소에 들던 온갖 잡생각들도 안 떠오르고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였다. 회사에 오면 왠지 긴장되고 떨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느낌이 싹 사라졌다.
아! 보통 사람들 머릿 속은 이렇게 고요한가 보구나.
그동안 나는 이 느낌을 모르고 살았구나
약은 안경과도 같다. 고도근시가 아닌 이상 내가 무엇인가를 자세히 볼 필요가 없으면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약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내 선택에 따라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일시 중지한다고 해서 금단현상이 있거나 내성이 생기는건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 집중이 잘 안되고 늘 긴장해 있고 실수가 많다면 나도 ADHD일 수 있으니 꼭 처방을 받도록 하자. 꼭 ADHD가 아니라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면 의학의 힘을 빌려 효과를 볼 수 있다. 꼭 활용하자.
회사에서 일을 못하는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의 깊은 곳에는 심리적인 문제가 반드시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내 노력만 갖고는 일 못하는 문제를 고치는데 한계가 있다. 내가 어떤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내가 ADHD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자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의 문제가 있었는데 왜 이걸 무시하고 방치했을까..끊임없이 나를 질책했었는데 내 자신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꼭 심리치료,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아보자. 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더 잘 알아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방문해보자.
당신 자신에게 약간의 시간을 투자할 마음이 있다면 당신의 기분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데이비드 D. 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