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직장인 살아남기
민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배수진의 각오로 임한 것이다.
'이렇게 딱 1년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자'
40년이 넘는 인생 동안 저질렀던 모든 실수들을 노트에 빼곡하게 적었다. 학교에서 함부로 말해 친구와 주먹다짐을 벌였던 일, 화를 참지 못하고 의자를 던졌던 일,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아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았던 일, 회사에서 행했던 수많은 실수들..실수들은 한 쪽을 넘어 세 쪽에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의 근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문득 회사에서 야근하는 것이 싫어, 아들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퇴근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왜 거짓말했던 것일까?
원인 1 : 왜 거짓말을 하였는가?
-> 야근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원인 2 : 왜 야근하는 것이 싫었는가?
->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원인 3 : 왜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게 싫었는가?
-> 회사에 있으면 답답하고 불편하다.
원인 4 : 왜 회사에 있으면 답답하고 불편한가?
->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원인 5 : 왜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은가?
-> 내가 자주 실수하고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원인 6 : 나는 왜 자주 실수하고 의사소통을 잘 못하는가?
-> ADHD 원인이 크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원인 7 : 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데도 하고 있는가?
->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원인을 계속 파고 들어가면 결국,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회사 일은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정받기도 어렵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굳이 늦게까지 야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민수는 결심했다. 회사는 내가 계속 있을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 계획도 없이 지금 당장 회사를 나갈 수는 없다. 단기적으로는 실수를 줄이는 방법들을 찾아보자. 그게 내가 살길이다. 장기적으로는 회사를 나간 뒤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일단 실수를 없애야 한다. ADHD가 있는 민수에게 실수를 없앤다는 것은 평생 300미터 이상 산에 올라가 본 적 없는 사람이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처럼 난공불락의 미션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30분 더 일찍 와서 30분 더 늦게 퇴근하기로 했다. 빨리 퇴근하려고 후다닥 일을 처리하는 것이 모든 실수의 근본 원인이었다. 차라리 근무시간이 조금 더 늘어날지언정,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질지언정 실수를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민수가 열심히 일한다는 소문이 조금씩 부서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세 번은 다시 읽었다. 메뉴얼에 따라 1) 제목은 정확한지, 2) 수신자는 정확하게 들어가있는지, 3) 첨부파일은 제대로 첨부되었는지, 4) 날짜나 장소는 정확한지 등을 일일이 체크하고 보냈다.
팀장이 지시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다시 확인했다. 자기가 이해한 내용을 바로 물어본 것이다. 1) 내일 퇴근 때까지 하면 되고, 2) 예전 보고서 중 2번 목차 내용은 지우고, 3) 4페이지 이후 내용은 부록으로 다 빼면 되지요? 이렇게 다시 확인한 것이다.
업무가 새로 생길 때마다 플래너에 기록했다. 그리고 다 끝나게 되면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알려줬다. 그래야 그들도 알고 다음 업무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팀원들과 대화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했다. 일단 먼저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 타이밍에 이 주제로 말하는게 적당한지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점심식사 때 백 대리가 "요즘 야식으로햄버거를 매일 먹었더니 한 달 만에 5킬로그램이 쪘다" 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래서 얼굴이 부어 보이는구나" 이랬을텐데, 민수는 살짝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체 규칙도 만들었다. 실수를 할 때는 벌금을 내걸었다. 한 번 실수할 때마다 1000원을 내는 방식이었다. 민수가 다니는 교회에 한 달에 한 번씩 그 벌금을 헌금으로 냈다. 첫 달은 헌금액이 3만원이었다. 그러나 다음 달은 1만원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민수는 꿈이 있었다. 나처럼 ADHD가 있어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직장에서 일을 못해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탈출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10년 이상 교육업무를 했고, 본인이 직접 강의 자료도 만들고 강의도 했기에 경험은 충분히 쌓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민수의 강의 교안 만드는 능력 하나 만큼은 최고로 평가했다. 민수는 독서를 좋아하고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했다. 법, 경영, 경제, 역사, 지리 등등 그의 지식은 굉장히 깊고 넓었다.
회사에서 실수를 줄이고 업무 성과를 내는 것은 당장 회사를 나가는 상황을 막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개선된 것을 몸소 경험해야 이후에 자신있게 내 노하우를 강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성공 경험 쌓기를 위해 실수를 줄이는데 더 악착 같이 임하게 되었다.
민수는 요즘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쓴다. 다음 달에는 출간도 할 계획이다. 그 길이 쉽지 않지만 많은 출판사와 협의를 하는 중이다.
결코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민수가 15년간 회사에서 받았던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장인 자기개발서처럼 "나처럼 따라하면 회사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어요" 이런 사탕발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인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인드', '사람마다 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해답은 알아서 잘 찾아보세요' 이런 두루뭉실하고 무책임한 소리도 하고 싶지 않았다.
민수는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었다. 생각하는 것도, 관심사도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랐다. 이게 직장생활 내내 발목을 잡았다. "4차원이다", "이상하다" 는 수근거림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프리랜서 작가, 강사로서 이런 특징은 장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 포인트가 되었던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남들보다 반 보만 더 앞서가도 성공한다' 고 말했다. 민수는 반 보가 앞서가는지는 몰라도 반 보가 남들과는 달랐다. 이건 ADHD가 준 선물이었다.
'나는 끝에서부터 열린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회사생활의 끝은 민수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될 터였다. 크리스찬인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다. 각자에게는 고유한 달란트를 주셨다. 그 달란트를 찾아서 정금같이 만드는게 그의 소명이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회사일에 충실하려 했다.
일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자 일이 좋아졌다. 실수를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단순히 쫓겨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다. 일을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수는 변해갔다. 이제 그에게 ADHD는 족쇄가 아니라 항상 끼고 다니는 반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ADHD로 직장에서 고통을 겪으시는 분들, ADHD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일을 잘 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이 스토리가 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