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향수
내 어릴 적 이야기 대부분이 시작된 곳.
뛰어놀던 흙마당이 시멘트로 바뀌고,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을 걷어치운 후 씌웠던 슬레이트 지붕이 다시 한번 양철지붕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인, 멈춰진 시간의 장소.
사실 그것 말고도 변한 것은 많겠지만 기억 속의 장소는 어린 시절 그대로를 각인하고 멈춰서 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소다. 그래서인지 기억 속에는 집의 구조와 변천사가 아직도 또렸하다. 부엌과 마당, 사랑채와 작은방, 안방의 벽을 헐어내고 시멘트 블록으로 번듯하게 벽을 세우던 장면... 비교적 공간과 형태에 대한 기억이 비교적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였나, 지금 나는 건축을 하고 있다.
대들보에 병자년 오월이라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이 집은 1936년에 지어진 집일 터다. 1996년이 병자년이었고, 그 이전으로 60년을 거슬로 올라가면 그즈음 이리라.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하시고 할아버지와 사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었으니 1936년 5월 2일. 그때가 맞을 게다. 부모님 결혼 후 30년이 지나 내가 태어났고, 다시 50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족히 80년 이상이 지난터다.
낡고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내 기억 속의 집은 늘 낮고, 비좁고 허름하기만 했었다. 천장 속으론 쥐들이 지나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기도 했다. 그래서 였는지 집을 언제 떠나게 될까를 고대하듯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대학교에 입학하며 작업실에서의 생활을 시작으로 집을 나섰는데, 그렇게 다시 30년이 훌쩍 흘렀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하던 그곳이, 이제 나이 들고 보니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고, 어릴 적 박제된 기억이 늘 그리움이 되는 장소가 되었다.
처마 끝에 강낭콩 꾸러미가 달려 있었다.
얼마 전 어머니 아버지를 뵈러 잠시 들렀을 때다.
어머니는 늘 그러신다.
나같이 외로운 여편네는 없을 거라고. "딸이라도 있어야 하소연이라도 하지..." 하시며 말이다. 콩깍지 속 콩알들처럼 자손들이 늘어 북적여도 "없는 딸"을 찾으시는 것을 보면, 그 자손들도 각기 쓰임새가 다른 모양이다.
집이란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고, 번성하고, 또다시 그것이 되풀이되는 축복의 장소임을 아마도 부모님은 아실터다. 그래서 그 과거, 자식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뛰어놀던 기억으로 박제된 그곳을 떠나지 못하시고 불편하심을 친구 삼아 그렇게 오늘도 그곳에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낡은 집하나 이야기를 해도 족히 80년을 훌쩍 넘어서는 시간을 이야기해야 그 내력을 겨우 알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집>이 가지는 위대함이란 생각이다. 아무리 허름한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의 이야기가 가지는 서사성과 생명력은 새롭고 단단하며 값비싼 그 어떤 건축 재료로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기에 집을 이야기할 때는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하겠단 생각이다. 얼마짜리로 지을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도 함께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