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 것과 만드는 것
衣食住
시대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입고, 먹고, 사는 것에 더욱더 집중을 하는 모양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의 나뭇잎은 수치를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입는 것이었다면 생존을 위한 입는 것을 거쳐서 신분과 개성을 나타내기 위한 입는 것으로, 입는 것(패션)은 제2의 얼굴이거나 시대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창이 된 지 오래다. 또, 소위 '먹방'이라는 이름으로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요즘, 먹는 것이 단순히 살기(생존) 위한 것을 넘어서게 되면 인식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집에 대하여도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특히 "주택"이라는 이름의 집(building)은 큰 흐름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단 생각이다.
재산의 투자처로서의 물리적 성격의 집이 생활과 삶,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하는 인문적 성격의 집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house'의 성격이 강하던 집에서 'home'의 성격이 강한 집으로 일대 전환을 겪고 있는 중인 것이다.
衣-食-住의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먹고 '사는' 문제나 집에서 '사는'문제는 아직까지 생존을 위한 기본적 조건으로, 그야말로 '사는' 문제다.
반면, 입는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에 비해 생존을 위한 우선순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으로 제일 앞에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사회적이며 관계적 존재 인가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입는 것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는 것'의 문제를 '사는 곳'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적 관계를 위계나 계급으로 편향하여 보게 된다. 그러니 더 커야 하고, 더 비싸야 하며, 더 멋있어야 한다.
家
자주 듣고 있는 이야기 중,
"전원주택(별장)을 너무 크게 지었나 봐...... 주말에 내려가서 청소만 하고 올라와...."
최근 삶의 방식을 잘 말해주는 한마디가 아닌가 싶다. 큰 것이 좋던 시절에는 아주 만족스러웠을 그 주택이, 삶의 내용이 중요시 여겨지고 있는 작금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속에는 집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가 아주 잘, 그리고 멋지게 담겨 있다.
옷을 짓다, 밥을 짓다, 시를 짓다, 집을 짓다.
옷을 만든다, 밥을 만든다, 집을 만든다는 표현과 다르게 '짓는다'고 하는 동사는 행위주체의 '애정'과 '정성'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잘 구분 짓는 표현이라 하겠다. 바로 가족을 향한 행위에만 '짓는다'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면, 의식주는 경제적 가치, 생산의 효율성, 욕망과 괘락의 정도처럼 정량적 문제가 아니라 정성적 문제이지 싶다.
필자는 건축하는 사람이니, 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다.
가족을 향한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는 사뭇 다르다.
가족을 위한 집의 경우 재산적 가치가 높지 않아도 좋다. 집의 의미를 조사한 자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집은 '휴식의 공간'이고, '두 발 뻗고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 거기에 조건을 더하면 할수록 집의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 투자하기 좋은 집, 값싸게 지어서 값비싸게 파는 집, 과시하기에 좋은 집...
필자를 찾는 건축주들 중 대다수는 작은 집을 원하는 분들이다.
규모가 작아지게 되면, 본질에 충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욕심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집중할 때, 비로소 작은 규모임에도 만족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집은 삶을 살기 위한 터전이지, 부담이거나 스트레스이거나 혹은 짐이 되어 서는 안 된다는 생각.
작은집에서 가볍게 살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시설과 최대한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