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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SMIN Jul 18. 2018

손끝에 묻어나는 찰나의 쾌감  

손끝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멈춰 세우기 위한 전쟁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스마트폰의 빛나는 화면 속에서, LED니 아몰레드니 하는 이름이 붙여진 TV 화면 속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다양한 전자기기들 속에서, 찰나의 시선을 잡기 위한 노력들이 아우성치는 그런 시대에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잘 만들어진 한 컷의 이미지가 돈벌이가 되고 그 잠시 동안의 시선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호사스러운 한 “컷” 들이 우리로 하여금 충격과 자극, 색다름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그런 시대.
역설적이게도, 그 강렬하고, 개성 넘치며, 호사스럽기까지 한 이미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새롭고 더 강렬하며 더 재미있고 더 멋진 것을 찾아 강박적으로 헤매게 만들며 <중독자>로의 전락을 강요하고 있기도 하다.


ADHD. 
주의력 결핍과 과잉 행동장애.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가락과 시각이 혼연일체가 되어 먹잇감을 찾듯 숨 가쁘게 움직이는 동공과 그 앞을 지나는 이미지들. 이런 시대에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치료도 하지 않은 ADHD증후군들에게 ‘제발! 가만히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시대가 변하였으니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해야 할지, 아니면 문제가 있으니 고쳐 나가야 한다고 해야 할지 참으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온 젊은 세대들은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넘쳐나는 이미지들을 즐기고 있는데, 소위 기성의 옛 세대들만이 괜한 걱정들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성찰을 통한 발견이라는 측면보다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의한 반응에 더욱더 민감해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관찰과 발견을 통해 얻게 되는 부가적인 심상들 대신에 직접적으로 던져진 이미지들에 반응하는 말초적 감각이 단련되고 있는 이 시대는 마치 <라디오 시대>와<TV 시대>에서 보여주었던 인식과 정서 급변과도 유사하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라디오 드라마는 참으로 많은 상상력을 자극했었다.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장면과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상상해 내는 것. 그렇게 하려면 자연스럽게 집중을 통한 관찰과 발견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펼치던 드라마를 직접적인 장면과 상황을 제공하는 TV가 대신하면서 더 이상 라디오에서는 드라마가 필요치 않았다. 라디오 속 드라마의 자리는 음악과 뉴스, 그리고 세상을 떠도는 신변의 잡기들이 메웠고 자연스럽게 관찰과 발견을 통해 강화되었던 스토리는 TV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이미 그 이전에도 변화를 경험했었다. 

문자와 사진의 시대, 종이의 시대에서 소리의 시대로 변화 말이다.
기호-문자-소리-영상-멀티미디어…


사실 이로서 세상은 더욱더 풍요로워졌으며, 가히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시대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


이 시대를 대변하는 단어 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수 있겠으나, 이 시대가 걱정스러운 까닭은 바로 “스마트”라는 단어 때문이란 생각이다. 기계가 스마트한 시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스마트한 IT 기기들의 시대. 그 속에 인간은 그 기기들을 향유하며, 같이 스마트해 지기를 꿈꾼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모르는 것을 검색할 수 있는 시대, 난생처음 가보는 곳도 마치 어제 다녀왔던 것처럼 확실하게 찾아갈 수 있는 시대, 몇 번의 손놀림 만으로도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 과연 이런 시대 속에 사는 나는 ‘스마트’ 한 걸까!


혹여, 아는 것과 찾아보는 것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깊은 성찰을 통해 발견하고 채득 하는 느린 방법 대신, 손쉬운 몇 번의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그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풍요를 넘어 과잉공급되는 이미지들을 그저 소비하고는 있지만, 그 속에서 말초적 자극 이외의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 없이 '<휴식>한다'는 개념을, 몰두하여 다른 생각 하기를 차단해 버리는 <게임>이 대체하고 있는 시대가 과연 깊이 있는 인생의 본질로 우리를 이끌 수 있을까? 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를 넘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된 지금 과연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선명하게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을까?


시간을 가지고, 

변화될 시대, 앞으로의 시대… 아니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 

추억도, 생각도, 지식도… 손 안의 기기 속에 저장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으로 나의 나 됨을 지켜갈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지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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