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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Oct 06. 2022

다른 세계에서도(이현석 소설집, 자음과 모음)

지하철에서 읽는 책

"직장생활의 지루함을 견디려 소설 창작 아카데미를 드문드문 다닌 지 한 해가 지난 2017년 가을, <참(站)>이 어느 일간지의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문단 문학 시장에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에필로그 중


소설가 이현석 님의 작가 생활은 직장생활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습작에서 시작되었다. 직장인의 글쓰기라니 어쩌면 나와 너무나 비슷한 시작에 뿌듯함을 느낀다. 2020년 젊은 작가상 수상자였다니 그때 동네책방 에디션으로 구입한 책에서 난 강화길의 소설 <음복>에만 빠졌었다.



이현석 작가님의 첫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는 나의 최애 동네책방 문학 소매점 인스타 피드에서 발견한 책이다. 출근길 지하철에 머무르는 시간은 단 12분이고 대여 섯장 넘기면 내려야 한다. 읽던 부분이 진지하면 계단을 오르면서 계속 읽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든 의료업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저자가 의사 출신이라 그렇기도 하고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자의 습관 때문이리라.



만화가 김산호라는 분이 1959년부터 10년 간 연재한 SF만화 <라이파이>라는 게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라이파이에 나오는 옆차기 동작을 해 보이는 장면을 읽으며 나 어릴 적 마징가제트 만화에 반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로봇의 머리에 앉아서 조종하고 싶었던 꿈 많은 시절이 있었다.



북한에서 귀순한 의사 부태복이 소신껏 환자를 진료하는 장면도 신선했다. 남들은 그냥 폐렴이라고 여긴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보고 비싼 멸균실로 옮긴 부태복은 코로나라는 신종 감염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습관적인 업무 추진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중요한 업무에서 은근히 제외되고 있음을 진영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버티기 위해선 닮아가야 했다. 닮다 보니 버틸 수 있겠다는 허약한 믿음마저 생겼다. 그에게 임용은 단순히 정규직 전환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버텨온 시간에 대한 증명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가능한 일이었나." (277쪽)



조직 내에서 중요한 업무를 하는 사람과 배제된 사람과의 간극은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2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내 생각은 노 NO다.



아침마다 조금씩 읽고 생각하며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책장을 덮으니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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