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컨추리우먼 Jan 04. 2023

가계부를 쓰다

느낌 있는 일상


새해 가계부를 열심히 쓰겠다는 다짐으로 <365일 자동으로 돈이 모이는 가계부>를 샀다. 이번에 3권째 산 가계부다. 오미옥이라는 블로거가 개발했는데 가정에서 쉽게 절약할 수 있는 주식비나 부식비를 5주 단위로 계산하여 예산을 짜고 주마다 남긴 돈을 무조건 저축하는 방식이다.


 


2년 전에 난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호기심에 가계부를 주문했고 매일 기록을 해보았다. 어떤 주에는 마이나스가 되기도 했지만 2~3주 모은 돈을 들고 점심시간에 은행에 갔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돈이 모이는 걸 체험했다. 한두 푼이 모여 목돈이 되었다. 모은 돈이 10만 원이 넘어가니 놀라웠다. 카뱅크 적금에 추가 불입했다.


 


2021년 여름 난 잘 가는 갤러리에서 여름 세일을 한다며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난 쭉 둘러보다가 우측 벽면에 걸린 그림에 눈길이 갔다. 나이 든 세 여인이 비키니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서핑과 튜브를 들고 바다로 가는 그림이다. 아랫배는 나오고 종아리에 힘줄이 보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며 신나게 가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그림 제목은 <summer trio> 여름휴가를 즐기는 세 여인이다.


 


그림을 사서 집으로 가져와 책장 위에 놓았다. 저녁에 신랑이 들어와서 그림을 보더니 마누라 자화상이라며 웃었다. 그림값은 가계부를 써서 절약한 돈으로 냈다. 그해 가을 친한 독서 모임 선배가 사진전을 했다. 흑백으로 찍은 사진 옆에 시를 지었다. 난 맘에 드는 시화를 한 점 골라서 역시 가계부 절약한 돈으로 샀다.


 


작년 여름에도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했고 난 같은 작가의 작품을 샀다. 배 나온 중년 남자가 자동차 바퀴를 튜브 삼아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읽고 있는데 복장은 여름휴가철 남자 수영복에 분홍 수영 모자를 쓴 삼각형의 독특한 작품이다. 제목이 ‘휴식’이라고 쓰인 작품을 보자마자 ‘이건 신랑이야!’ 하며 바로 샀다. 전시가 끝나고 난 작품을 찾아와서 신랑이 잘 볼 수 있게 거실 TV 옆에 두었다. 신랑은 그림을 보더니 자신을 보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가계부를 부지런히 쓰기란 쉽지 않다. 자꾸 까먹는 요즘에는 일단 돈이든 카드를 쓰면 바로 핸드폰 오늘의 일정에 입력한다. 며칠씩 까먹어도 보고 쓸 수 있다. 쓰면 저절로 돈이 모이는 건 아니다. 다만 쓰면서 돈이 모이는 맛을 느끼기 때문에 가계부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1년에 1점씩 살 수 있는 매력을 갖게 한 <365일 자동으로 돈이 모이는 가계부>를 난 내년에도 살 거다.

작가의 이전글 모닝페이지를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