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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Nov 25. 2021

북한산에서 만난 에방레터

글동무들

북한산 가을 단풍 구경하자고 약속한 <에방 레터> 회원들. 지난여름에는 경복궁 달구경 하기로 했었는데 코로나와 태풍으로 못 가고 이번 산행 약속은 지키게 되었다.     


<에방레터>란 글쓰기로 만난 동무들의 모임 이름이다. 회원들은 3년 전 ‘감성 에세이 쓰기’ 반에서 처음 만났는데, 4인 4색으로 각자 특색 있는 글을 쓰고 있다. 북한산에는 2020년 1월 6일에 새해맞이로 같이 산행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사실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래킹. 트래킹이라기보다는 산책이랄까. 우리는 정상보다는 지상을 좋아하고 주변 경치 살피는 걸 좋아하며 가져간 라면과 김밥, 커피 한잔을 놓고 밀린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걸 좋아한다.  

    

우리는 구파발역에서 아침 일찍 만나 북한산행 버스를 타고 산 입구에 내렸다. 새벽에 비가 내려서인지 단풍잎이 더 선명한 붉은색을 띤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등산객들은 한산하다. 약간 흐린 날에는 사진이 더 선명하니 천천히 올라가면서 맘껏 찍어보기로 한다. 이럴 때 제대로 단풍을 즐기는 거다.     


산 입구에 올라가니 돌계단 위에 금잔화 꽃들이 손을 흔든다. 산등성이에는 단풍이요, 발아래는 꽃밭이라니 황홀한 순간이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는 붉은 단풍잎은 노란색으로 변하고, 노란색에서 수분이 빠지면 마른 이파리가 되어 쭈그러지고 가볍게 나무에서 떨어진다. 계곡 옆 그늘에 있는 단풍잎들은 아직도 붉은 자태를 자랑한다. 나무는 때가 되면 잎을 떨굴 줄 안다.      


산행길을 따라가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넓은 계곡 아래 단풍이 물들고, 또 올라가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노란 은행잎들이 돌계단을 수놓고 있다. 잠깐 쉬면서 사발면과 김밥을 꺼내 먹고, 커피타임을 한다. 매주 산행을 다니는 마니아님은 낡은 꽃무늬 우산으로 만든 둥그런 원탁 테이블을 깐다. 그 위에 낙엽을 얹고 간식을 올린 뒤 사진을 찍는다. 산에서 먹는 사발면은 그 맛이 기가 막힌다. 커피도 한잔하면서 아름다운 가을 경치에 푹 빠진다.    

  

다시 짐을 싸서 산으로 올라간다. 중성문을 지나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면 커다란 청운 동문 바위가 보인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니 우리는 바위 아래에서 쉬기로 한다. 기와집 처마처럼 윗돌이 비를 가려준다. 또 커피를 한잔씩 준비하고 새우깡을 먹으며 제법 떨어지는 빗소리와 경치를 눈과 귀로 담는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떨어지는 빗소리와 어우러져 생동감을 준다.      


우리는 ‘좋다’는 표현 말고 다른 거 없냐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북한산 정취를 마음으로 담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사는 이야기, 직장 이야기, 자녀들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산행 마니아님은 사진 잘 찍는 법을 직접 가르쳐준다. 구도 잡는 법, 라이브 초점, 파노라마, 느린 동작 등 핸드폰으로 찍을 수 있는 다양한 사진 기법을 알려주면 난 열심히 따라 해 본다. 산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빗줄기는 굵어지고 우리도 하산 준비를 한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펼쳐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남들이 보면 그게 무슨 북한산 간 거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북한산에 갔고 단풍 구경을 원 없이 했으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내려왔다. 비는 내리고 산 입구 식당으로 들어갔다. 지글지글 고소한 막전에 막걸리 한잔, 잔치국수에 메밀전병까지 푸짐한 시간을 보내고 이런 게 사는 맛이라고 합창하면서 다음 산행을 기약했다.     

소중한 만남이란 이런 게 아닐까.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주말에 만나 자연과 함께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하고, 응원한다.


학창 시절 절친도 아니요, 직장동료도 아니지만 우린 글쓰기로 뭉친 찐 친이다. 조만간 책을 한 권씩 써서 맞교환할지도 모른다. 사진 잘 찍는 등산 마니아님은 기꺼이 사진을 주신다고 한다. 그러면 우린 모두 작가로 데뷔하는 거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정상 못 온 타운 하우스님 다음 산행에는 꼭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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