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란 말이 있는데요. 덕질이랑 일, 그러니까 업을 합친 신조어인데, 제가 지금 덕업일치 같은 인터뷰 중이랍니다."
"인터뷰 따로 안 해도 글 쓸수 있잖아요"라고 농담을 건네시는 감독님께 '덕업일치'란 표현을 알려드렸습니다. 2006년 개봉한 <디어 평양> 때부터 팬이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말이지요. 아마 그 즈음 <송환> <우리학교>와 함께 제가 최애하는 다큐멘터리 3편 정도 될 거 같은데요. 아들들을 북송시킨 조총련 간부 아버지와 그런 부모가 못마땅했던 아나키스트 딸의 이야기를 양영희 Yonghi Yang 감독 본인이 다큐화한 <디어 평양>은 재일조선인으로 분단과 통일을 바라본 굉장히 드물면서 미시사와 거시사를 절묘하게 교차시키는 탁월한 데뷔작이었습니다. 나름 분단과 통일에 관심이 많다고 여겼던 저에게 <디어평양>은 둔중한 헤머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주기도 했고요. 당시 <피와 뼈>나 <박치기> 같은 재일조선인 소재 일본영화들과도 겹쳐지기도 한 다큐였고요. 이런 글을 썼었더군요.
"딸아, 이제는 한국 국적을 가지렴"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
다큐로 만나는 재일조선인과 북한 주민들의 맨얼굴,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
https://blog.naver.com/nhrck/124562109
이후로 팬이 된 건 물론이고, 조카 선화에 대한 애정이 절절했던 <굿바이, 평양>이나 역시 북송됐던 오빠들에 대한 감정을 극영화로 승화시키고 안도 사쿠라, 이우라 아라타, 양익준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던 <가족의 나라>까지 연달아 좋은 작품들을 선보이셨지요. 이후 격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사이 재일조선인 관련 글을 쓸때마다 감독님 작품들을 소환하긴 했지만 먹고사니즘에 빠져 잊고 살았더랬죠.
그러다 2018년부터 제가 제주4.3 관련된 기획/홍보 일을 간간히 하게됐고, 급기야 올해는 4.3과 친구들 영화제란 이름으로 기획전 같은 작은 영화제를 열었었는데요. 작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수삭작인 양영희 감독님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란 존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수입사인 엣나인필름에서 도와주셔서 영화제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고, 광주 순회상영회까지 열었는데 그땐 감독님께서 줌 화상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해주셔서 무척이나 감사했답니다.
그리고 오는 20일 개봉을 맞게 됐습니다. <디어 평양>부터 출연하셨던 어머님께선 병환이 왔고, 감독님은 일본인 남자친구를 소개하고 새로운 식구가 생기는 와중에 어머니가 제주4.3의 피해자였고, 그 현대사 최대 비극의 소용돌이에서 고향인 제주에서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신 이후 남한 정부와의 대면을 아예 피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역시나 가족사를 통해 거시적인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 이전 가족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며, 그 마침표가 하필 제주4.3과 연결되는 묘한,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다큐입니다.
팬심으로 인증드립니다. 저 또한 앞서 4.3과 친구들 영화제에 적극 소개했던 그 <수프와 이데올로기>, 많이 응원해 주시고 극장에서 관람해 주시기를요. 요즘 극장가가 얼어 붙었다고들 하는데, 그 한파를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꼭 이겨냈으면 합니다. 아, 인터뷰 기사는 목요일쯤 나올거 같고요. 그에 앞서 지난 8월 말에 썼던 일본 개봉 관련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