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다가도 또다시 힘을 낸다.
슬픔은 아주 잠시 잠깐잠깐씩 찾아온다.
시험관시술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더 이상 늦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다.
"시험관까지 해야 하나? 라니...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아이를 갖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지."
시험관은 사실 주저했었다.
남들 다 갖는 아이를 돈을 많이 써가면서까지 노력한다는 게 흔치는 않은 일이니까...
주변에 자연임신이 많아서 더더욱 시험관까지 한다는 게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와 남편은 난임시술에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서 우리들의 부담금은 늘어날 것이었다.
난임시술할 비용으로 좋은 호텔에서 아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 시절은 끝났다.
또 이렇게 한 살을 먹었고, 또 이렇게 아이를 갖지 못했다.
이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아이를 가지면 좋은 시기보다 조금 더 늦었다.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
어쩐지 결혼이 뜻대로 되었다 싶었더니 임신이 이렇게도 힘들다.
이렇게 해서 쌍둥이를 임신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시험관시술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더 많이 갖고 싶다.
난임병원에서는 만약 인공수정 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두 번째 생리 2-3일 차에 찾아오라고 했다.
인공수정에서 과배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되어서 바로 그다음 달에 과배란과정을 거칠 수는 없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이번 달에는 과배란약을 통한 자연임신시도, 인공수정, 시험관 다 불가하고 오로지 자연임신 시도만 가능한 거다.
인공수정하고 나서 바로 나오는 생리 후 배란일이 다가왔다.
배란이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자연임신이 힘들다는 것을 경험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 또 병원을 찾아갔다. 이번달의 임신 기회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높이고 싶었다.
"약을 안 쓰고 인공수정할 수 있나요?"
인터넷에서 나처럼 시험관 전에 시간이 비는 경우에는 간간히 '자연주기 인공수정법'이라면서 과배란 약이나 주사 없이 배란일에 맞춰서 인공수정시술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봤었다. 1%라도 확률을 높이고 싶은 마음으로 물었다.
"가능성이 낮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인공수정을 해도 가능성이 낮다고 안 하는 게 낫다고 하셨다.
"초음파로 배란일을 체크받을 수 있나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시험관을 시작하기 전에도 하는 과정이 있어서 이번달에는 자연임신 시도가 안 된다고 하시면서 피임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중간에 병원에 주사 맞으러 또 와야 한다고 하셨다.
피임약은 요일이 표시되어 있어서 매일 복용여부를 확인하기 좋았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한 알씩 복용했다.
약 2주 후에 병원에서 엉덩이에 조기배란억제주사를 맞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시험관시술은 장기요법과 단기요법이 있으며, 생리 2-3일 차부터 시작하는 건 단기요법이고 생리 전부터 시작하는 건 장기요법이라고 했다.
미리 조기배란억제주사를 맞으면, 과배란주사를 맞을 때 난포들이 더 일정하게 자라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더 많은 주사를 쓰고 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난 원래 단기요법을 계획하고 계셨던 거 같은데 괜히 병원에 가서 장기요법으로 바뀐 것 같다.
피임약은 보통 생리 기간부터 먹는 건데 배란일을 바로 앞두고 먹게 되어서 생리일이 더 늦어지고 결과적으로 자임시도도 안 되고 시험관 시술도 늦어지는 최악의 한 수를 뒀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난자채취 때는 좋겠지만 이번달의 자연임신 기회는 스스로의 손으로 날렸다.
괜히 병원에 갔다.
그래도 비슷한 크기의 난자들이 잘 채취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시험관 시술이 벌써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 같았다.
정말로 정말로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까지 몇 년을 기다렸는데 한 달이 조급해서 또 난리를 쳤구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진행될 난임시술 과정은 그대로 진행된다. 같은 과정을 겪을 거라면 마음가짐을 더 편하게 하는 게 낫다. 알고는 있지만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인내심을 갖자.
내가 잘하는 건 기다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