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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호텔

by 로에필라

가끔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쉴 때가 있다.



하얗고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워서 따뜻하게 온도조절을 하고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조식을 먹고 조용하게 책을 읽는다.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상이지만 호텔에서 며칠 쉬면 일상 속의 풍요를 경험할 수가 있다.

집에서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집안일을 신경 안 쓸 수가 없다.

집에서 깨끗한 호텔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뒤로 그 이상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침구를 세탁하고, 건조하고 또다시 침대에 낑낑거리며 끼워야 한다.


하지만 호텔에서는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온전히 쉬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푹신푹신한 베개에 누우면 머리가 폭 들어가서 솜털 사이에 파묻힌 듯하다.


레몬향이 나는 일회용 어메니티로 샤워를 하고 각 잡혀서 접어진 하얗고 커다란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고 가운을 걸친다.


아이보리색 커튼을 촤르르 젖히면 불이 지지 않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진다.

고층빌딩의 사무실들은 늦은 밤까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삼베 같은 까실한 베이지 천으로 덧데인 의자에 앉아서 그레이 책상 위로 스탠드를 탁 켠다.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 집중이 잘 되는 더 진노랑의 스탠드 조명이 책 위로 드리운다.


밤에는 뮤지컬 공연의 주인공이 된다.

서울의 불빛들 아래에 나는 책을 읽는 주연이다.

오늘의 나는 꿈을 가지고 상경해서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는 고학생이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가끔 스스로를 서울로 보낸다.


12시 정각에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던 우리 동네와는 다르게 이곳은 더 많은 회사가 있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11시부터 점심시간이 시작되나 보다. 점심시간에 큰 도로로 나가보니 민족 대이동 수준의 러시가 이루어진다. 스타벅스에는 자리가 없고, 입구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호텔 안에서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서울도 복잡하고 화려하다.

호텔 밖으로 나가면 걷는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나도 모르게 빨리 걷고 있다.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지점의 스타벅스로 가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2 천보나 걸었다.

만보기 어플의 발걸음 수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호텔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 독서등을 켰다.

칼각으로 정리된 침구에 누우니 잠이 잘 온다.


내일 외출 후 문을 열면 또 깨끗하게 침구정리가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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