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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pr 06. 2023

난자를 얼려볼까?

미혼 친구와의 대화

난자채취 후 복수가 차면서 몸 상태가 안 좋았을 때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때쯤이면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심한 건 아니어서 만날 때쯤이면 훨훨 날아다니지 않을까......?


친구를 만났다.

미혼인 친구는 작년 새해에도 난자를 얼릴까 고민을 했었다.


사실 그 친구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30대 초반부터 그 친구는 '35살이 넘어도 결혼을 안 하고 있으면 난자를 얼려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우리는 등산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산 아래에서 좋은 공기만 맡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다르게 꼭 정상까지 찍어야 한다면서 나를 끌고 올라가던 친구.


정상에 올라가면 힘들어도 다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난 등산을 하면서 숨이 너무 차서 말도 안 나왔었다.

나무벤치나 정자만 보면 쉬었다 가자고 하기 일쑤였다.


쉬면서 수다를 떨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다시 올라가던 씩씩한 내 친구.


"나 이번에 사주를 봤는데, 나는 35살 이후에 결혼해야 된데."


"우리 둘 다 결혼 늦게 할 거 같아."


"회사 언니가 난자 얼려보라고 하더라."


"난자를 얼려?"


"응. 요즘엔 많이 하나 봐. 나도 난자 얼리려고. 늦게 결혼할 거여서."


"난자 얼리는 거 듣긴 했는데, 실제로 네 주변에서 한다니깐 신기해."


"나는 아기를 3명 낳아서 엄마한테 맡기고 계속 일할 거야. 지금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출산 때문에 공백이 생겨도 될 만큼 실력을 갖출 거야." 


"3명? 나는 두 명정도 낳고 싶어."


"그런데 우리 엄마가 서울로 안 오려고 하는데 그게 문제야."




어린 우리는 35살이 그렇게 성큼 다가올 줄은 몰랐었다.

'35'라는 숫자는 마치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며, 어린 시절 그대로 순수하고 철없이 웃으면서 있을 수 있는 마지노선인 것만 같았다.

'35'는 멀고 멀게만 느껴지는 그냥 미래 어느 날의 마침표였다.


어린 날의 끝.

나로서의 나는 끝.

순수의 종말.

이기심의 종말.


우리는 35살까지는 결혼과 아이를 생각하지 않기로 유예를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유예가 끝이 났다.

35는 제 속도로 오고 있었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는 급하게 찾아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약속처럼 편한 신발을 신고 만난다.

천변이나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더 다양한 생각이 내면에서부터 끌어져 나오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같은 고향에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직종의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은 다른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걸 좋아한다.


"나 난자 얼릴까?"


"올해 열심히 데이트하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난자 안 얼려도 되지. 내가 난자채취로 고생해 보니까 너는 그 고생 안 했으면 좋겠어. 난자는 해동될 때 많이 죽는데. 그럼 넉넉히 채취하려면 적어도 3번 이상은 채취를 해야 하는데 그냥 결혼하고 한 번 채취해서 바로 수정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 미혼은 건보료 지원도 안 되어서 돈도 많이 나갈 텐데 네가 아이 갖고 싶어 할 때쯤에는 아마 난임시술비도 다 무료일걸?"


"네 이야기 들으니까 지금 난자를 얼리고 싶지는 않아 지네. 난자 채취하는데 복수 차는지도 몰랐었어 난."


배주사를 맞았다는 이야기에도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혼자서 배주사를 놨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아이를 3명 갖고 싶어 했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님에게 맡기고 본인은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갈 거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안정이 되면 그때 결혼할 거라고 하면서 잡은 나이가 35.

우린 벌써 그 나이를 지났다.

친구는 이제 이직을 거쳐 아이를 가진 어머니들에게 복지가 좋은 회사에서 자리 잡았다.

드디어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릴 여건이 되었다.


"올해는 진지한 연애를 하고 싶어."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기다렸다는 듯이 작년부터 생각해 왔던 지인의 사진을 보여줬다.

진지한 이야기에서 다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공원을 걸었다.


"그런데 너 손이 길고 예쁘다."


"그래?"

손이 예쁘다는 소리는 가끔 들어보긴 했는데 오랜 친구에게 들으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넌 남자 손 어떤 스타일을 좋아해? 길쭉한 손 하고 두꺼운 손. 남자 긴 손은 호불호가 있데. 난 두툼한 손이 남자다워 보여서 좋더라."


"남편이 두꺼운 손이구나?!"


"응. 너무 귀여워."


"너도 쉽게 사람을 가까이 사귀진 않잖아. 어떻게 하다가 지금 남편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가까워졌어?"


인간관계가 넓지 않고 바운더리 밖의 사람하고는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던 나였다.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은 혼자 있는 것보다 더 편해. 진짜 이런 사람이 생길지 몰랐어."


남자친구가 없었어도 아이는 갖고 싶어 했던 지금보다 더 어렸던 우리.

농담 삼아서 "아이 가지려면 결혼해야 돼."라고 말했었다.

 

한 친구는 결혼하고 한 친구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아이 계획을 말한다. 


언젠가 둘 다 엄마가 되어서 삶의 또 다른 챕터에 대해서 수다 떨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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