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얀 가루가 있는 유리병 안에 주사액을 투입한 후 섞는다. 유리병의 뚜껑은 고무로 되어있어서 두꺼운 주삿바늘이 들어간다. 그리고 하얀 가루와 주사액을 바늘을 꽂은 채로 흔들어서 섞어준다. 꽤나 잘 섞여서 좀만 흔들면 하얀 가루가 다 없어진다. 그리고 그 주삿바늘로 주사액을 빨아들인다.
내 배에 주삿바늘을 꽂을 때는 더 얇은 바늘로 바꿔서 끼우면 된다.
새로운 배주사는 금방 익숙해졌다.
나중엔 주사 맞을 시간이 되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주사를 섞어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만 일체형 주사와는 다르게 배에 잘 안 들어가는 듯해서 몇 번이나 다시 찌른 적이 많았다.
매일 배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면서 주삿바늘을 찔렀다.
주삿바늘이 큰 건지 아프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배에는 점점 시퍼런 멍이 늘어갔다.
며칠 후에 난자채취 이후의 결과가 나왔다.
12개의 난자 중에서 7개가 수정이 되었다.
임신이 계속해서 안되길래 "혹시 우리의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기 싫어하나?"라는 작은 의심을 남편에게 말해본 적이 있었다. "이번 시험관으로 알게 되겠네. 수정이 잘 안 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다행히도 수정은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고 우리의 정자와 난자도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내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수정은 되는 걸까?
수정이 된다면, 착상이 안 되는 걸까?
여러 궁금증들이 시험관시술을 하면서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12개 중 7개가 수정되었다는 건 양호한 것 같고, 그 7개의 수정란 중에서 5개나 동결시켰다니 대단하다.
몸이 좋아서 신선으로 이식하는 경우는 보통 3일 배양을 쓰던데 혹시나 살아남지 못한 나머지 2개의 수정란은 3일까지는 살아있었을까? 그래도 5개가 5일까지 살아남다니 장하다.
5일 배양 5개?
55라니 오! 감탄이 저절로 나올 만큼 어감이 좋다.
나는 수정란을 배양시킨 적은 없었지만, 식물은 배양시켜 본 적이 있다.
70% 에탄올을 양팔과 라텍스 장갑 위에 다 뿌려서 깨끗하게 한 후 클린벤치라는 깨끗한 공간에 손을 집어넣고 유리로 막을 내려서 숨조차 안 들어가게 실험을 했었다. 실험 앞 뒤로는 클린벤치 내부와 페트리 디쉬를 포함한 모든 실험기구를 에탄올을 뿌리고 또 UV로 소독할 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었다. 배양을 하면서 잘 자라는 모습을 출근하자마자 달려가서 확인했다. 퇴근하기 전에도 들러서 밤새 죽지 않길 바라며 한 번씩 바라보고 갈 만큼 애정을 줬었다. 아마도 모든 연구원은 자신이 배양하는 것을 소중히 아끼고 돌볼 것이다. 난임병원의 연구원들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키웠을지 안 봐도 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7개의 수정란 중 5일 동안 곱게곱게 정성 들여서 키워서 5개나 살렸다. 배양 과정에서 얼마나 오염이 잘 나고 얼마나 잘 죽는지 모른다. 내가 메이저 난임병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연구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실력 있는 연구원들이 더 메이저 병원에서 많이 일할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난자채취 과정이 힘든 만큼 채취된 난자를 잘 배양하는 연구원들의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결배아 개수에 대 만족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만 35세 이상은 5일 배양은 2개, 3일 배양은 3개까지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난 2개씩 2번, 그리고 남은 1개 한번 해서 총 3번 정도 이식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중간에 배아를 해동하다가 죽는다든지 의사 선생님께서 2개를 이식 안 해준다는지 하는 이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