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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Mar 24. 2023

난자채취 경험담

총 12개 채취되었습니다

오늘은 난자채취 하는 날.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난임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이 주차하는 사이에 난 먼저 병원으로 가서 접수를 했다.


"남편분은 안 오셨어요?"


"지금 주차하고 있어요."


팔목에 나와 남편의 이름이 적힌 초록색 띠지를 찼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한 팔에 링거를 맞으며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갔다 오라는 말에 화장실을 갔다가 채취실로 들어갔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난자를 채취하는 의자에 앉았다.

부분마취를 해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난자를 채취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난자를 채취하면, 연구원이 그걸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남자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1개 채취되었습니다."

"안 나왔습니다."

"안 나왔습니다."


계속되는 '나왔습니다.'에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주사를 언제 맞았는지 물어보셨다.


정확히 채취 이틀 전 저녁 8시에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시간 맞춰서 제대로 맞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 순간은 8시도 생각이 안 나고 정신이 부유하는 상태여서 내가 병원의 지침대로 제대로 했다는 것 말고 정확한 시간이라든지 날짜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 주사 맞았어요?"


"어제는 안 맞았어요."


마취성분 때문인지 멍 한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약한 마약을 하면 그런 기분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 그대로 누워있고 싶었다.


채취하는 영상을 보았다.

빨간 배경에 스포이트 같은 걸로 하얀색 난자를 빨아들이는데 난자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저 빨간색이 다 피 인가?


아래에 물이 많은 게 느껴졌다.

피가 많이 나오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총 12개 채취되었습니." 


마지막 연구원의 말과 함께 난자채취가 끝이 났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의 피검사 결과를 간호사에게 가져오라고 하더니 "동결로 진행할 거예요."라고 해서 "네"라고 대답했는데 그때부터 마취기운이 더 도는 거 같았다.


채취가 끝나고 간호사가 아래를 천 같은 걸로 닦아주는 게 느껴졌다. 굉장히 많은 액체가 아래에 흥건한 느낌이었다. 피인지 난포액인지 뭔지를 아주 많이 쏟아낸 것 같았다. 제정신이면 무서웠을 테지만 부분마취가 잘 되어서인지 깊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베드까지 걸어가는데도 기분이 멍 했다.



누워서 수액을 맞았다. 베드마다 커튼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커튼은 쳐 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수액 한 팩만 맞고 가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채취실과 가장 가까운 끝쪽 베드였다. 내 옆으로 쭉 있는 베드에는 같은 날 채취를 한 사람들이 다 누워있었다. 살짝 보니 다들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핸드폰으로 남편과 계속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나를 다 맞고 나서 아직도 어지럽냐고 해서 조금 그렇다고 했더니 하나를 더 놔주셨다.


조금 맞고 나니 괜찮아진 것 같아서 이제 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기다리는 남편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객관적으로 내 몸상태를 따질 겨를도 없이 남편한테 달려가고 싶었다. 안 괜찮아도 내 속 마음은 '괜찮으니 빨리 남편에게 보내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대기실에 앉아있던 남편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울렁거리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하나도 안 울렁거리고 조금 어지럽기만 했어."


주사실 대기표를 뽑고 주사를 맞으러 기다리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면서 어지러워졌다.

내 순서는 다가오고 있었지만 울렁거리는 기분에 토할 것만 같아서 화장실에 가서 변기통을 붙들고 토를 하려고 했다. 주사실에서 내 순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당장은 갈 수가 없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갔다'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토를 하지는 못했지만 잠시 주저앉아있었더니 괜찮아진 것 같아서 주사실에 들어갔다.


주사실에서는 이번 주사는 섞어야 된다고 하면서 주사액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 설명이 점점 이명처럼 들리면서 주위가 노래졌다. 주사 설명까진 다 듣고 주사처방을 받아서 나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을 정도가 되었다. 식은땀이 나면서 덥고 시야가 흐려져서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죄송한데 너무 어지러워요. 다시 베드로 가서 누워야 할 것 같아요."

주사실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부축해서 나왔다.

주사실을 나왔더니 주사실 앞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품에 주사 한 박스를 안겨주고 뛰어가듯이 다시 회복실로 급하게 들어갔다. 

너무 어지러워서 더 수액을 맞아야겠다고 말하고 베드에 누웠다. 

어느덧 베드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눕자마자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괜찮아졌을 텐데 괜히 왔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어쩌면 누웠기 때문에 괜찮아진 거일 수도 있다. 


수액 한 팩을 다 맞고 다시 대기실에 가서 주사실의 대기표를 뽑았다. 다시 주사실에 갔다.

"아까 설명을 잘 못 들었어요.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여기 종이에 적힌 순서대로 하면 돼요. 어렵지 않아요."

하면서 다시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진료실은 가셨어요?"

"아니요. 주사실에 가라는 말을 듣고 바로 주사실로 왔어요."


주사실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은 의사 선생님에게 가서 아직 나의 진료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셨다. 내가 채취 후에 대기실에 갔다가 다시 회복실에 갔고, 주사실 순서표도 두 번이나 뽑는 바람에 같이 채취한 사람들에 비해서 많이 늦어진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난자를 채취한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복수가 찰 수 있어서 이번에 이식은 못하고 동결로 진행한다고 했다. 이온음료를 많이 먹으면 좋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혹시 복수가 안 차면 바로 이식할 수 있나요"


"복수가 찰 거예요. 임신하면 임신호르몬이 나와서 더 힘들어져요. 이번에는 동결로 진행하는 게 맞아요."


단호한 의사 선생님의 말에 바로 납득이 되었다.

'임신하면'이라는 가정조차도 고마웠다.


복수가 차고 불편하고 힘들면 병원에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생리 시작하고 병원에 방문하라고 하셨다.


이로써 시험관시술 과정에서 가장 힘들다는 난자채취 파트를 끝냈다.

남편이 대기실에 계속 앉아있어 줘서 의지가 되었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난자채취에 대해서 말했다.


"12개 채취됐데"


"잘 됐다."


"생각보다 조금 채취됐어."


난자채취 전 초음파를 볼 때에 대충 보기에도 스무 개도 넘어 보이는 난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12개면 많지."


남편의 기쁜 목소리를 들으니 걱정이 다 날아갔다.


"나는 엄청 많이 나올 줄 알고 둘째 셋째 계획도 하고 있었단 말이야."


"나중에 또 하면 되지."


나는 왜 사서 걱정을 했지?

12개 나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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