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에필라 Mar 22. 2023

긴장돼, 채취하는 거 아프데

난자채취 전날

난자채취 전날,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이 저녁을 마지막으로 내일 아침에는 금식을 하고 병원에 가서 난자채취를 하게 된다.



채취 전날은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번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

아침과 점심에 영양가 높은 한식을 차려먹었더니 저녁엔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저녁까지 든든히 먹어둬야지 내일 아침 난자채취를 무사히 끝낼 거 같았는데 도무지 한식이 먹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오늘 급작스레 회식이 잡혔다고 연락이 왔다.

샌드위치와 우유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샌드위치 반조각과 우유 한 컵을 먹었더니 적당하게 배가 불러서 컨디션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난 혼자 있을 땐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편이다.

한 접시에 먹을 수 있는 식단을 좋아한다.


'내가 어쩌다가 시험관까지 하게 되었을까?'

샌드위치를 천천히 베어 먹으며 생각했다.


난소 기능이 안 좋아진다고 느낀 건 해외유학 시절이었다.

밥 먹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크래커와 참치샐러드 아니면 도넛과 커피로 식사를 한 적이 많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으며 제대로 요리해서 밥을 먹지 않았다.

생리양이 줄었으며 생리기간과 간격도 불규칙해졌다.


그래도 그땐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여자로서의 내 몸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일단은 공부가 더 급하니까 나중에 좋은 직업을 가지고 나서 몸을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리양이 생리대도 안 해도 될 정도로 확 줄고 나서 '아이를 못 가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임신이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노산의 나이가 35살이라고는 해도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35살 이하였다.

허니문 베이비를 꿈꿨으며, 1년 안에 당연히 임신을 할 줄만 알았다.


임신은 쉽지 않았다.


시골에 살면서 난임병원의 문턱을 밟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난임병원을 다니면서 더 전문적으로 임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시험관을 하는 과정은 아직까지는 힘들지 않다.


과거를 생각해 본다.

내가 계속 공부만 했다면?

남편을 더 늦게 만났다면? 아니 만나지 못했다면?


생각해 보면 지금 시험관을 하는 과정도 감사하다.

유학생활중 급하게 한국에 들어와서 취업을 하고,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던 과정이 참 극적이다.


내일은 난자채취를 하고 나서 집에서 푹 쉴 생각이다.

사랑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침대에 오래오래 누워서 쉬고 싶다.




난자 채취 전날밤이다.

왼쪽 골반쪽이 욱신욱신 아팠다.

인공수정 때도 그렇지만 이번 난자채취 때도 그렇고 의사 선생님이 대단한 것 같다. 시술일 전날밤이 되면 어김없이 엄청난 배란통이 몰려온다. 그만큼 시간을 잘 맞추는 실력 있는 선생님이라 믿고 시술을 맡길 수 있다.

이틀 전 봤던 초음파에서 딱히 난포크기를 쟀던 것 같지도 않은데 시술경험이 많으셔서 딱 보면 아시나 보다.


"채취하는 거 아프데. 긴장돼."


남편이 말한다.

"내가 대신해주고 싶어."


남편의 마음을 잘 안다.

난 언제나 그 마음이 고맙다.

모든 과정을 함께 겪어주는 남편이 고맙다.

이전 11화 내가 대신 임신해주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