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멈춘 날

모든 게 멈췄다

by 로에필라

난임병원에 9주 2일 차에 방문해서 마지막 초음파를 보기로 했다. 난임병원 졸업예정일이었다. 그날에 분만병원으로 가기 위한 진료의뢰서를 받기로 했다. 금요일에 혼자 병원을 방문하려 했는데 남편이 수요일에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해서 함께 병원에 방문하기로 했다.


임신 9주 0일 차, 남편에게 아이의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려줄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남편이 주차를 하는 사이 나는 지하주차장에서 병원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전이어서 대기가 길 것을 예상하고 빨리 접수를 하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운이 좋게도 대기인원이 별로 없어서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게 됐다.


진료실 의자에 앉으니 책상에 진료의뢰서 한 장이 놓여있었다. '분만병원 진료의뢰서 써주실 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께 이번주 내내 아랫배에 통증이 있다고 했더니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랫배 통증은 자궁이 커지려는 증상인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에게 "아빠 닮아서 키가 큰가 봐요. 이렇게 배가 계속 아픈걸 보니."라고 말하곤 했었다.


임신이 처음이어서 임신 증상과 잘못되어 가는 증상을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초음파를 보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굳고, 잠시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 침묵이 어찌나 무겁던지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두려워졌다.


"좋지 않네요."


심장이 콱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숨이 멎은 것 같이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말이 안 나오고 숨 쉬는 것도 잊는 것 같다.


"거의 자라지 않았어요."


그리고 뭐라고 하셨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유산'이라는 말을 언급하신 것 같다. 남편에게 심장소리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려고 했던 핸드폰으로 최신통화목록을 눌렀다.

제일 위에 떠 있는 이름은 '남편'이다.

남편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 유산이래요. 빨리 올라와야 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유산'이란 말을 한 걸 보니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말한 것 같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 심장과 내 몸, 시간, 공기, 모든 게 그대로 멈춘 것만 같았다. 나는 그대로 굳어있었다.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으면 유산확률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심장소리를 들려준 후에 심장이 멈추고 말았다. 지난번 진료 때 혼자 심장소리를 듣기는 잘했다. 남편도 들었었다면 더 힘들어했을 것 같다. 아이의 심장소리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크고 선명해서 '참 건강하구나.'라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소리와 감격은 잊히지가 않고 아직도 선명하다.


오늘이 수요일인데 이번 주 안에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두세 달은 푹 쉬어야 된다고 하셨다.


분만병원 전원이 예정되었던 진료의뢰서는 상병명에 'Abortion'이라고 쓰여있는 죽음의 통지서가 되었다.


Abortion....... 유산.

탕탕! 아이의 사망선고였다.



내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수납처로 가니 흰 봉투를 주면서 "오늘은 비용이 없어요. 카드는 만드셨죠?"라고 묻는다. 내가 다니는 난임병원은 유산하면 진료비를 받지 않는다.


'진료비는 얼마든지 낼 테니 아이를 살려주세요!!!'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돈으로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으로 제발 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러했을 것이다.


유산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저 충격적이었다. 카드 이야기를 들으니 임산부 등록을 안 한 게 생각나면서 조금씩 현실로 돌아왔다. 아기집이나 심장소리로 병원에서 임신확인을 받고 나서 임산부 등록을 해야지 유산에 관련된 시술도 임신바우처로 결제할 수가 있다.


"카드는 만들었는데, 임산부 등록은 안 했어요."


"임산부 등록은 저희가 공단에 해드렸어요."


정신없이 병원문을 열고 나갔다. 남편이 복도 끝에서 오고 있었다. 빠르게 와서 나를 안아줬다.


그 공간에서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주차차량 등록도 하지 않았으니...... 이성적 판단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 계속해서 나를 위로해 주자 나는 정말로 괜찮아진 것 같았다. 유산이 아직은 크게 다가오지 않고 실감이 안 났다. 믿기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남편이 계속 같이 있어줘서 좋은 생각만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내가 커피도 안 마시고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아서 죄책감은 안 들어. 아기가 약했던 건가 봐." 이렇게 말하고 나서 머릿속으로는 내가 조심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생각했다가 멈췄다가, 또 생각이 났다가 멈췄다. 후회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집에 와서 쉬면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산 증상이 피가 나는 건 줄 알았는데, 피가 안 나도 이렇게 갑자기 아이의 심장이 멈출 수 있는 거라는 걸 몰랐다.

복통이 있어도 "아기가 커지려나 봐."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틀 먼저 병원 가서 빨리 알게 되어서 다행이야. 주말에 알았으면 바로 수술할 병원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거 아니야."


남편과 함께 긍정적인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빠르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빠가 받았다. "아빠. 오늘 병원 갔는데 유산했데요." 덤덤하게 유산 사실을 알린 후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약물배출을 하고 싶었지만 8주로 예상되는 내 주수에는 안될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희망적인 글을 읽었다. 모 병원이 약물배출을 잘하기로 유명하다는 글이었다.



남편에게 약물배출하는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절대로 뭐가 나와도 보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선 약물배출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 고통, 내 아픔만 생각해 주고 아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게 내 위로가 되었다.


"나는 산모와 아이 중에서 한 명만 살릴 수 있다고 하면 무조건 산모를 살릴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아픈 게 싫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내 걱정만 해준다.

남편은 정말 영원한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임, 임신, 유산을 겪으면서 한결같이 날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고도 미안했다.


"당신에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잠시 아이와 우리 부부가 함께하는 꿈을 꾸며 행복에 젖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악몽이 되어서 와장창창 깨졌다.


태명을 만든 것

남편을 임신어플에 초대한 것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 것

임산복을 산 것

...

첫 임신의 설렘은 비극이 되었다.


영화에서 보면 행복한 순간은 나중에 일어날 불행에 대한 복선으로 나온다.

임신해서 행복했던 건 다 나중에 겪을 불행을 크게 만드는 장치인 것 같았다.


나 혼자 감당하고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임신이었기에 기쁨이 큰 만큼 좌절도 컸다.


"애기 없어도 돼. 난 너만 있으면 돼. 네가 가장 소중해."


나도 남편이 가장 소중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남편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고비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남편이 옆에서 울지 않고 커다란 나무처럼 든든하게 버텨줘서 너무 고마웠다. 남편이 만약 감정적으로 굴었다면 나 역시 영향을 받아서 한없이 우울하고 힘들어했을 것 같다.



남편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어본다.

사람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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