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천천히 찾아왔다

정말로 갔구나

by 로에필라

난임병원에서 충격적인 유산 소식을 들은 후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발급받은 국민행복카드 카드사에 전화해서 바우처를 등록하려고 했더니 1566-3232에 전화하라고 했다.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과 통화를 했더니 1577-1000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국민건강보험과 통화가 되었다. 먼저 내 개인정보를 확인했다.

"출산 예정일이 1월 17일 맞으시죠?"

"네."

"바우처 등록이 안 되어있네요. 카드는 발급받으셨나요?"

"네. S 카드사에서 받았어요."

"S 카드로 등록해 드렸어요. 이제 병원에서 바우처 사용한다고 말하고 사용하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인터넷에서 8주 유산에 대한 글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8주는 소파술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9주 0일에 유산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8주쯤 아이가 심정지 된 것으로 추측했었다.) 약물배출을 잘해준다는 병원을 검색했다. 약물배출해서 잘 안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약물배출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ㅇㅇ병원 산부인과를 검색한 뒤, 나오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유산 판정을 받아서 약물배출하는 방법이 가능한지 상담받고 싶어요. 오늘 예약이 가능할까요?"


"K 교수님이 진료하세요. 오후 한 시 반까지 오셔서 기다리시면 진료 볼 수 있어요."


"K 교수님 말고 다른 분으로 예약할 수도 있나요?"

인터넷에서 같은 병원 계류유산 약물배출에 대한 글에 대한 댓글에 다른 교수님이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혹시 나에게 다른 옵션이 있나 궁금했다.


"산과 교수님한테 받아야죠. 오늘은 K 교수님한테만 받을 수 있어요."


전화를 끝내고 집에서 남편하고 쉬면서 약물배출과 소파술의 장단점에 대한 글들을 읽었다. 그리고 약물배출 후기들도 읽었다.


남편은 점심을 먹고, 난 먹지 않았다. 오전에 맥모닝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별로 뭔가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맥모닝은 병원 가는 길에 드라이브스루로 사놓고 차에 놨었고, 유산을 알게 된 후 차에 타서 먹었다. 무슨 정신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난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남편한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던 마음도 있었다. 어떻게든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괜찮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유산 사실을 듣고 난 이후였다면 아무것도 사 먹지 않았을 것 같다.


식욕이 사라졌다.


남편이 운전해서 약물배출에 대해서 상담할 병원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접수를 했더니 처음 왔기 때문에 미리 결제해야 한다고 했다.


"임신 바우처로 사용해 주세요."

카드결제 후 핸드폰으로 바로 문자가 왔다.

임신바우처를 유산해서 처음 써 본다.


접수 후 산부인과를 가니 밖으로 나가서 '도착확인'을 눌러야 한다고 했다. 키오스크로 영수증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서 '도착확인'을 했다.


다시 산부인과로 들어갔다.


"제가 유산을 해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까 전화하신 분이죠?"라고 접수처에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께서 발랄하게 되물으셨다.


"네."


접수를 위해서 진료의뢰서가 담긴 봉투를 가방에서 꺼냈다.

진료의뢰서와 피 검사지 안에 작은 종이가 있었다.

아기의 마지막 초음파 사진이었다.

난임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주진 않고 봉투에 넣어주셨나 보다. 작은 배려에 너무 감사했다.



"문진표 작성해 주세요."


문진표에 혈압도 나와있어서 혈압도 재고, 키와 몸무게도 재서 기록했다.


키는 더 줄어있었고, 몸무게는 더 늘어있었다.


키가 왜 이렇게 작게 나왔지?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몸을 굽힌 건지 뭔지 모르겠다.

몸무게는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계속 늘어났었다.

임신하고 살찌는 게 은근히 좋았었는데......

결국 남은 건 살 뿐이네.


문진표 중에서 "마지막 생리는 언제 하셨습니까?"라는 항목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생리일을 생리어플에 기록하며 임신준비를 하던 나였기에 자신 있게 정확한 날짜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리를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다. 생리어플을 찾아서 뒤적거리기도 싫었다. 공란으로 비워놨는데 끝까지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입원하고 나서 첫날에 간호사 선생님께서 대략적으로라도 말해달라고 해서 대답해 줬다.


"동결 이식을 5월 1일에 했으니까, 4월에 생리했을 거예요." 정확히 기억하는 동결이식일. 아이가 생긴 날.


...


대기는 매우 길었다.

처음에는 별로 대기인원이 없어서 금방 진료를 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2시간이 넘어가면서 아무리 새로운 환자들이 와도 예약된 사람들이 먼저 진료 보는 것을 지켜보다가 결국 물어봤다.


"진료는 언제 볼 수 있나요? 혹시 예약손님들 다 하고 나서 마지막 순서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많이 기다리셔야 해요."


당일에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다만 남편의 소중한 휴가에 이렇게 긴 대기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게 조금 미안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이러려고 오늘 휴가를 쓰고 싶었나 봐."


남편한테 산책하고 오라고 세 번쯤 밖으로 내보냈다. 그만큼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이름을 불렀다.


"화장실 갔다 온 지 오래되셨죠?"


"네."


"초음파 봐야 되니까 화장실 먼저 다녀오세요."


병원 화장실에 갔더니 화장실 바닥과 벽면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병원 화장실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 진료실 앞에 가서 대기했다.



초음파실의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에어컨소리인지 기계음도 나는 거 같아서 더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난다.

유산을 했다는 걸...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셨다.

"처음 임신하신 거예요?"

"네."


"약물배출을 원하시는 거죠?"


"네. 할 수만 있다면 약물배출로 하고 싶어요."



"진료실에서 얘기합시다. "


그리고 남편과 진료실에 들어갔다.



"크기를 보면 7주 4일 정도 됐어요. 지금이 9주 0일이잖아요. 보통 2주면 자연배출이 되는데 아직까지 있으니까 4일 안에는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


7주 2일째에 우렁차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었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아이의 심장이 정지했다니...... 몰랐다. 아이가 잘 자라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내가 8주부터 내내 아랫배가 아팠구나...'


"빨리 하고 싶어요."


"약물배출을 하게 되면 많이 아플 거예요. 입원하는 방법과 진통제와 약을 받아서 집에서 하는 방법이 있어요. 입원하게 되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돼서 오늘은 못해요. 오늘 검사하면 내일부터 입원할 수 있어요. 대신 자궁수축을 돕는 주사가 들어가서 더 세고, 진통제도 놔주기 때문에 덜 아플 수 있어요."


"입원할게요."


그리고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사까지 놓으면 더 확실히 되겠지?"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1인실에 입원할 수 있나요?"


남편은 1인실에 입원하지 않으면 내가 불편할까 봐 1인실을 여쭤봤다.


"1인실이라고 적어놓을게요. 우리 쪽에 자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다른 쪽이라도 1인실로 갈 수 있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내일 3시에서 4시쯤 입원하면, 모레 새벽에 배출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빨리 보내줘야겠다.


" 보호자도 꼭 같이 있어야 하나요?"


"응급수술이 아니니 없어도 돼요. 만약 보호자도 계실 거면 코로나검사해야 해요. 자세한 건 간호사가 안내해 줄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내일 입원하기로 하고, 남편과 함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 딸린 컨테이너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나가 있으라고 했다. 기다리니 와서 면봉으로 콧구멍 깊숙이 집어넣는데 너무 아파서 코피가 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뒤로 갔다.


"뒤로 가시면 또 해야 돼요."


코로나 검사를 마친 후 남편에게 물었다.

"나 코피 나요? 뭔가 액체가 흐르는 거 같아요. 너무 아프네요."


"난 코로나 검사 3번 해봤는데 지금이 가장 아팠어."


계류유산 약물배출 입원을 하려고 생애 첫 PCR코로나 검사를 했다.



조금 더 후련해진 기분으로 나와서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로 햄버거와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왔다.


남편과 햄버거와 커피를 먹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하다가 저녁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


북적북적한 식당은 저녁시간이어서 거의 꽉 차있었다.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갑자기 슬픔이 찾아왔다.

모두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갑자기 불행한 일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슬픔은 천천히 찾아왔다.


남편이 함께 있어줬기 때문에 모든 충격을 잊을 수 있었다.

남편이 잠시 떠나자 찾아온 슬픔은 얕으면서도 묵직하게 밤까지 나를 짓눌렀다.


남편이 잠들고, 밤에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고 입원물품을 챙기는 데 가슴 한편에 밀어두었던 슬픔이 찾아왔다.


'아아. 아이가 정말로 갔구나.'


슬픔, 분노, 죄책감의 감정이 차례로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한 시간쯤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다시 나아졌다. 결국 죄책감은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나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한테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난임과 유산을 겪으면서 얻은 가장 귀한 것.

바로 남편과의 사랑이다.

아이보다도 내가 힘들까 봐 걱정해 주며 계속 옆에 있어줬던 남편한테 너무 고마웠다.


자고 있는 남편 옆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휘몰아치던 감정들이 잦아들고 평안해진다.


안 좋은 일은 빨리 겪고 터는 게 나아.

더 좋은 일이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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