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예찬론
나는 아마추어다.
12가지의 특기와 24가지 취미를 가진 아마추어다. 그래서 별명도 걸침이다.
대추나무 연 걸치듯, 안 걸치는 데가 없다는 데서 불러준 애칭이다.
아마추어. 그렇지만 한 가지 단어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바로 ‘프로’라는 말.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걸치기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추어. 단어의 어원을 찾아봤다.
사랑하는 사람, 즉 무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에릭 부스는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이란 책에서 그리 말하였다. 밥벌이로서의 따분한 프로보다, 상업에 젖은 냉담한 전문가보다 가슴 따뜻한 아마추어가 낫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술자리가 심심해지면 판소리 단가 한 대목을 뽑는다. 따분한 게 싫어서이다. 흥이 나면 창부타령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난 그림을 그린다. 내 멋에 취해 붓을 잡는다. 그래도 무수한 세계여행을 하며 매 도시마다 현대미술관은 빠짐없이 들렀다. 그들의 개성이나 독특함을 봐 왔기에, 실수 속에서도 대작이 탄생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틀리고 엎어지면 어떤가. 사람을 사랑하는 자리라면 그것이 무관심한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못쓰는 시를, 서예를, 못하는 악기를, 춤을, 운동을 오늘도 부지런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행동주의자다. 으레 말하는 사회현상에 예민한 그런 행동주의가 아니다.
그냥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바로 실천에 옮기고 만다는 얘기다. 누가 그랬다.
차갑게 생각하지만 뜨거운 가슴이 밀어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그 말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생각과 느낌까지 왔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 많지 않은가. 때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한 계획에 대한 집착 등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불을 지르지 않고서는 씨를 뿌릴 수 없다’고....
이라고 중국의 니쾅이란 친구도 설파했지 않은가. 마치 오천년 전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써놓은 글귀와 맥을 같이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등록을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바로 발권을 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구입을 한다. 대신 충동구매와 다른 것은 사전에 충분히 숙고한다는 것이다. 차갑게 생각하고 뜨겁게 가슴이 뛴다면 망설일 일이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나에게 빳빳한 24장의 시간이 주어진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이런 호사를 매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림없는 일이다. 어느 날 아침,아니 저녁. 느닷없이 시간으로부터 격리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코로나 때처럼 2주 갖고 어림없다. 영원한 격리. 그래서 앙드레 지드가 마음에 든다.
나는 헤세를 좋아한다. ‘크눌프’와 ‘차륜밑에서’의 단편도 좋지만 대작 ‘유리알 유희’, 그중에 나오는 ‘단계’라는 시를 가끔 읊곤 한다.
특히 나는 그다음 구절을 좋아한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새로운 것을 향해 과감히 내디뎌라.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상한 힘이 우리를 보살펴 준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마지막 구절.
습관이란 관성처럼 무서운 것은 없으리라. 어제와 같은 오늘. 나는 늘 고치 속에 있을거야 하는 놈은 나비가 되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 말이다. 말콤이란 작자가 얘기했던가.
그렇다. 나는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 행동주의적 아마추어이다.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오늘을 새롭게 살고자 하는 ‘노마드’이다. 아니 ‘뱅가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