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이다

by 걸침

나는 아무래도 여름인가 보다.

수북이 산을 이룬 팥빙수가 좋으니 말이다. 더운 여름이면 자연 빙수를 찾아 알래스카로 파타고니아로 아이슬란드로 헤매고 다녔다. 만년설을 쳐다보며 저 빙하를 달빛에 갈아, 옆에 흩어져 있는 붉은 화산을 한 술 떠 얹어 천연 빙수를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가끔 하곤 했다. 아마 내 속엔 불이 많은 것 같다. 땀도 열도 가득한 체질이다.

음양오행에서는 4계절을 오행으로 나눈다.

나무의 봄, 불의 여름, 쇠의 가을, 물의 겨울. 그리고 특별히 흙이라는 요소를 여름과 가을 사이이자 전체의 가운데 위치에 넣어 5행이라 부른다. 오행끼리 서로 가까이 있으면 상생이라 하고 한 칸 건너 있으면 상극이 된다. 내가 속한 여름은 봄의 나무, 가운데에 위치한 흙과 가까우니 이 둘과는 상생이다. 나무가 있어야 불이 붙고 그것이 타면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이다. 내가 싱그럽고 약동하는 봄을 좋아하고, 한편으로 우직하고 꾸준한 흙의 성향을 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불과 상극은 물과 쇠다. 그렇다고 상극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나무를 태워 불을 피우지만 나무를 너무 많이 넣으면 불이 꺼진다. 이때는 쇠로 된 도끼로 나무를 잘게 잘라 넣어야 불이 산다. 필요 없는 산불은 물이 있어야 끌 수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내 가슴을 한 번에 끄는 사람이 있다. 바로 물로 빚은 아내다. 집안이 물 흐르듯이 돌아가는 이치다.

불은 옆에 있는 모든 것에 옮겨 붙으며 걸친다. 여름이면 넝쿨장미를 비롯하여 칡넝쿨, 고구마 줄기까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서로의 색과 의지를 걸친다. 철학자 러셀이 그런 얘기를 했다. 댐에는 수문이 많아야 한다고. 그래야 갑자기 홍수가 왔을 때 물의 양을 조절할 수가 있다고. 사람마다 관심과 경험의 문을 많이 갖고 있으면 그 문을 조절하면서 어려움은 피하고 즐거움은 더 할 수 있다고. 사유와 해학의 숲이 깊으면 외부의 무게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진작부터 판소리나, 민요, 대금, 피리, 탈춤을 비롯해 서예나 시, 그림에 걸친 이유이기도 하다. 불같은 여름엔 물 흐르는 개울가 바위에서 옛 선비처럼 풍악을 울리면서 노래에 대금 한 자락 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불의 여름은 인내의 시간이다. 삼복 무더위를 비롯해 태풍과 장마 홍수와 가뭄의 시간까지 온갖 끈기와 참음을 요한다. 수많은 압력을 견뎌야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그런 과정을 견뎌야 결실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매미가 왜 그리 여름을 크게 울까. 땅속에서 7년이란 인고의 시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의 몸짓 아니겠는가. 아직도 꿈틀대는 내 가슴 역시 오랜 인내란 무게에서 빠져나온 매미의 울림통인지 모른다.

여름은 걸침과 인내의 시간이며 불타는 젊음과 사랑의 계절이다. 세상과 수많은 인연을 쌓으며 열정과 끈기를 갖고 걸쳐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좋다.


주위에 설산이 없으니 어디 물가 바위라도 찾아봐야겠다. 뜨거운 가슴을 달래줄 사철가 한 대목 부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험, ‘이산 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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