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류시화
영국의 스톤헨지를 꼭 가보고 싶었다. 버킷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차를 빌려 고흐의 모습을 얼른 본 후에 도버해협을 건너 그곳을 향해 달렸다.
그것이 왜 만들어졌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고 미스터리에 쌓여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원형 고인돌 형태가 나를 이끄는 힘은 강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보여준 첫인상은 너무도 허전했다. 사람들이 운집한 휑한 벌판 가운데에 그저 덩그러니 수십 개의 돌이 얹혀 있을 뿐이다. 사진에서 보았던 신비한 일출의 모습이나 아름다운 일몰의 구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개 낀 벌판에 그저 힘없이 서 있는 돌들의 나열이었다. 물론 특별관람 신청을 하여 일몰 시에 다시 올 수는 있다 하였다. 그러나 이미 들떠 있던 마음이 식은 후에 알아낸 정보였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 발길의 무게는 기대했던 맛집을 나서는 걸음과 같았다. 버킷 하나가 그렇게 시들었다.
사랑도 그런 것일까. 만남이란 그런 것일까.
나는 옛 주택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한 번은 남한산성 밑의 마을을 둘러보다가 어느 쓰러져가는 고택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IMF 뒤끝이어서 어찌어찌 엮어보면 살 수도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쳤다. 정말 아쉬웠다. 그러고는 얼마 후에 그곳을 다시 가 보니 누가 그 집을 사서 정리했는지 몰라보게 다른 모습의 정원 겸 주택이 태어나있었다. 아마 내가 그 집을 샀어도 그리 멋지게 리모델링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계곡의 모양을 따라 정리한 숲 하며, 반듯하게 세워 놓은 정자 하며.....
그 말이 생각났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말. 무엇이든 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속에 있는 자그마한 아름다움을 캐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미켈란젤로였던가. 자기는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돌 속에 있는 아름다운 형상을 끄집어낼 뿐이라고.
사실 일상은 늘 반복된다. 환상이던 상대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일상이 된다. 그러나 그 같은 일상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중요하다고 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깨닫는 것이란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가족과 함께 열차로 시베리아 횡단을 한 적이 있다. 일주일을 계속 같은 풍경을 보다 보니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에 벌판에 통나무집에…. 그러나
마지막 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저 모든 풍경이 같은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햇살의 방향도 다르고 하나하나의 자작나무 모습도 다 다르고, 언덕의 기울기도 다르고 통나무집의 모습과 크기도 다르고..... 우리는 익숙한 것을 한 데 묶어 그냥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의 시처럼 거대한 숲은 풀잎 한 장의 흔들림으로 향기롭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행복이 가까이 있는 것을 모르고 우리는
거대한 환상을 찾아 헤매는 것이리라. 어느 선사의 말처럼 밖을 보지 말고 내 안을 보아야 하는 것을.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은 매일 있다는 말처럼.
결국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모르는 신비로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 사람 안의 생각을 듣고 그 사람 안의 시를 듣고 외운다는 것을.
‘지는 해를 뜨게 하지 말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해 줄 줄 아는 마음 아니겠는가.
거실에 앉아 낡은 양말을 깁고 있는 오래된 여인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낄 줄 알고,
햇살 비치는 언덕에 나란히 앉아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같이 놀랄 줄 아는 그런 사이가 싱그럽지 않겠는가.
시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시심을 갖은 사람이 되라고 일갈한 이가 생각난다. 사소한 것에서 놀라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큰 시인이 될 수 있으랴.
오늘도 나서볼까. 보이지 않는 그대의 장점을 찾아서. 숨어있는 당신의 시를 찾아서......